"내 아내를 자기 첩이라고 우기면 되겠느냐"…李대사, 美측 설득

미국 지명위원회(BGN)가 독도를 주인 없는 '주권 미지정 지역'으로 변경한 지 닷새째인 지난 28일(이하 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사무실에 이태식 주미대사와 제임스 제프리 NSC 부보좌관이 마주앉았다.

이 대사는 "수십 년을 같이 살아온 내 아내를 다른 남자가 갑자기 자기 첩이라고 우긴다면 용납할 수 있겠느냐"며 "이런 민감한 문제를 왜 미국이 떠맡으려고 하느냐"고 반문했다. 한국 내 여론 악화를 그대로 전달했다. 묵묵히 이 대사의 설명을 듣던 제프리 부보좌관은 "나도 한국사람이라면 그런 생각을 할 것"이라며 "대통령에게 보고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대사는 곧바로 존 네그로폰테 미 국무부 부장관도 찾아갔다. 네그로폰테 부장관 역시 이 대사의 말에 공감했고 동아시아태평양국과 정보조사국,법률사무실 등에 독도 표기에 대한 긴급 검토를 지시했다.

다음 날인 29일 이 대사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위한 합동대책회의에 참석한 이 대사는 잠시 회의장에 들른 부시 대통령을 따라 붙었다. 부시 대통령은 뜻밖에도 "지리적인 문제를 얘기하려는 것이지요"라며 "라이스 국무부 장관에게 검토를 지시했으니 잘 협의하라"는 권고까지 곁들였다. 독도 표기 문제가 변곡점에 이르렀음을 의미하는 순간이었다.

이날 오후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 주재로 열린 난상토론에선 미국 측 지리 전문가들도 한국의 지적에 타당성을 인정했다. 결국 다음 날인 30일 오후 1시 부시 대통령은 언론과의 회견에서 독도 표기의 원상 회복 결정을 발표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 과정에서 '친구는 도와야 한다'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