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ㆍ기후변화 … 모르는 사이 시작된 치명적 위협이 다가온다...최악의 시나리오

최악의 시나리오|캐스 R. 선스타인 지음|홍장호 옮김|에코리브르|399쪽|1만8000원

지난 몇 달 동안 우리 사회는 쇠고기 문제와 광우병 논쟁,촛불집회 사태로 극심한 혼란을 경험했다. 촛불집회가 몇 달씩이나 지속된 데에는 우리 사회 일각의 반미 감정과 정부에 대한 불신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겠지만 PD수첩의 광우병 보도로 인해 우리 국민 대다수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커다란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광우병은 동물성 사료를 섭취한 소의 체내에서 만들어진 프리온이라는 단백질이 인간에게 전이되어 발병한다. 그러나 광우병의 발생빈도는 지극히 낮아 미국에서조차도 환자발생은 아직까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이처럼 현실적으로는 발생 가능성이 무시할 정도로 낮지만 일단 발생하면 치명적인 피해를 가져오는 사태를 가리켜 전문적인 용어로는 '최악의 시나리오(worst-case scenario)'라고 부른다. 촛불집회 사태는 미국산 쇠고기가 본격적으로 수입될 때 예상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그대로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에서 빚어진 일종의 사회적 과잉대응 현상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다.

시카고 대학의 저명한 법학자 선스타인의 <<최악의 시나리오>>는 테러,오존층 파괴,기후 변화,유전자변형식품,허리케인,조류독감 등 현대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중요한 사안들에 대해 최악의 시나리오들을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특히 테러와 기후변화의 두 사안을 축으로 하여 논의를 집중하고 있다. 전자의 경우 9·11 사태로 최악의 시나리오가 이미 현실화되었던 데에 반해 후자의 경우는 범지구적인 기후재난의 도래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아직은 시나리오로만 존재한다는 점에서 서로 대비된다. 테러의 경우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었을 때 제한된 소수의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이 집중되지만 기후변화의 경우에는 그 피해가 전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점진적으로 발생한다는 차이점도 있다. 테러가 현재 미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가 당면하고 있는 실질적인 위협인 데에 반해 기후변화는 앞으로 우리 후손 세대들에서나 현실화될 것이다.

이 책은 사안에 따라 예상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어떻게 다른지,이 때문에 각각의 사안에서 빚어지는 사회적인 반응과 대응책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다.

광우병 사안에 있어 최악의 시나리오는 테러와 기후변화 두 시나리오의 중간적인 성격을 띤다고 할 수 있다. 단적인 사례로 미국산 쇠고기가 전면적으로 수입된다고 해도 우리나라에서 광우병이 발생할 확률은 당장의 테러 발생 확률보다도 낮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광우병의 잠복기가 최소한 20~30년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할 때 마냥 안심할 수도 없다는 점에서 기후변화와 유사하다. 광우병과 촛불집회의 사회학에 흥미를 느꼈던 독자라면 이 책에서 그 연결고리에 대한 새로운 실마리를 얻게 될 것이다.

< 홍욱희 세민환경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