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그들을 마음껏 뛰게 하라

김병주 <서강대 명예교수 · 경제학>

지난 4일 베이징 워터규브 수영장에서 훈련 중이던 박태환 선수가 불시에 도핑 테스트를 받았다. 국제올림픽위원회가 약물검사를 강화한 탓이다. 올림픽이 최초 개최된 1896년 아테네대회는 14개국이 참가한 소규모였고 도핑 테스트란 개념도 없었다. 그후 참가 국가와 선수가 늘면서 도핑 사례가 증가했다. 2004년 아테네 대회에서 27건의 도핑 사례가 적발되었다. 2008년 베이징 대회는 205개국 1만5000여 선수들이 참가해 302개 금메달 획득을 노린다. 사상 최대 규모인 만큼 도핑 우려도 전례없이 높다. 한국이 오래 목말랐던 금메달 갈증을 해소한 선수는 1976년 몬트리올대회 레슬링종목의 양정모였다. 올해에는 10개의 금메달 획득으로 종합순위 10위 달성을 목표로 삼고 있다. 스포츠 선수들은 다년간의 고된 훈련 끝에 경기장에서 한번 기량을 겨룬다. 메달리스트들은 개인적으로 영광의 주인공으로 평생을 살게 된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쥐꼬리 연금을 포함하는 물질적 보상은 그들이 선물하는 국민적 일체감과 자부심에 비해 그리 크지 않다. 선수들이 기량껏 뛸 수 있도록 국민의 성원이 요청된다. 다음 주 15일은 광복 63년,건국 60년 경축일이다. 건국 이후 나라를 지켜내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하는 고난과 영광이 점철된 역사가 전개돼 내려왔다.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12위 경제대국으로 치달은 오르막길은 고비마다 수많은 국민의 땀ㆍ눈물ㆍ피가 얼룩진 궤적으로 각인돼 있다.

고도성장의 어두운 그림자인 억압정치의 희생자들은 지난 10여년간 민주화유공자로 어느 애국의사ㆍ열사 못지않게 격상되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산업화 주역들은 망각의 세계로 몰렸다. 평생 근면성실한 경제생활 결과 여유를 갖게 된 근로자들은 졸부로,중소기업인들은 노동착취자로,대기업인은 부당재산 취득자로,정부주도형 개발시대의 대통령들은 독재자로만 낙인 찍혔다. 시장경제의 최대의 적이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다는 사실을 경계하면서 공과(功過)를 함께 보는 균형 잡힌 원근법이 아쉽다.

시장경제의 주체는 기업과 가계로 이루어지는 민간부문이다. 왜 한국경제가 경쟁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진하는가? 경제주체들이 경제의욕 상실증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 창업주 세대의 모험과 도전 정신이 실종된 지 오래다. 아니 국민정서에 압살되었다. 정부와 공생공존하던 시대는 행정만능시대이기도 했지만 촘촘한 규제의 법망에 걸려들게 마련인 기업들을 정부가 눈감아 주기도 했기에 기업이 크고 경제가 성장했다. 마치 초기 올림픽대회에 도핑테스트가 유명무실했듯이 말이다. 오늘날이라고 해서 10년 전 우승선수를 불러 현재의 기준으로 검사하고 실격시키는 일은 없다. 기업의 투명성,사회적 기여 등 오늘날의 기준은 환란 전에는 강조되지 않았다. 한국 기업인들은 과거의 크고 작은 과오를 모두 현재의 잣대로 언제 재판받게 될지 모르는 불안을 안고 대비해야 한다. 기업인은 도덕군자가 아니다. 그는 세계 방방곡곡의 수많은 시장을 누비며 상시적으로 경쟁하며 생존하는 야생동물이다. 그래야 국익이 증진된다. 내막을 알고 보면 후진국 거래선을 상대할 때 선진국 일류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현실은 이상세계가 아니고 이상도 유행을 탄다. 기업의 불법ㆍ탈법을 권장할 일이 아니지만 흙탕물에서 바지가랑이 보송보송 챙기며 외국기업과 경쟁하라고 발목 잡을 수 없다. 외국기업과 경쟁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기는커녕 기를 꺾으며 일자리 늘리라고 요구할 수 없다.

경제 살리는 첩경은 경제적 대사면이다. 경제인을 옭아맨 사슬을 풀어 마음껏 뛰게 하라.대표선수 빠진 선수단에 메달을 기대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