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구 칼럼] 서브프라임 모기지 '악몽'

수석논설위원 bklee@hankyung.com

르포 작가 츠츠미 미카가 쓴 <빈곤대국 아메리카>를 읽다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심각성을 새삼 깨닫게 됐다. 부동산 경기 추락보다는 금융업체들의 방만 경영과 부실한 대출관리에 근본 원인이 있고,해결책을 찾기도 쉽지 않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었다. 마리오 페르난데스.캘리포니아(스톡튼 마을)에 거주하는 히스패닉계 미국인인 그는 지난해 7월 살던 집에서 쫓겨났다. 2004년 50만달러(약 5억원)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론을 얻어 주택을 구입했지만 이자만 매달 3100달러에 이르는 무거운 부담을 이겨내지 못했다. 부인과 자녀(3명)들이 모두 일을 하며 소득의 대부분을 이자 갚는 데 투입해도 역부족이었다고 한다. 주목되는 것은 파산선고를 받은 적이 있는 데다 신용카드조차 소지하지 못하는 그가 너무도 손쉽게 거액의 융자를 얻었다는 점이다. 과정은 이러하다. 어느날 금융회사의 영업사원이 찾아와 자금을 지원해줄 테니 집을 사라고 권유하더라는 것이다. 소득수준은 따지지 않았다.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할 기회가 찾아왔다고 여긴 그는 앞뒤 가리지 않고 계약서에 사인을 했고 결국 더욱 깊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론은 다음 네 가지 요건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대상이라고 한다. 첫째,과거 12개월 이내에 30일 연체를 2회 이상 하거나 과거 24개월 이내에 60일 연체를 1회이상 한 사람. 둘째,과거 24개월 이내에 저당권이 실행되고 채무면제를 받은 자. 셋째,과거 5년 이내에 파산선고를 받은 자. 넷째,상환부담액이 수입의 50% 이상에 달하는 자 등이다. 따라서 부실이 발생할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고,그런 만큼 융자규모도 상환능력을 고려해 신중히 결정돼야 함은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마리오의 경우가 보여주듯 건당 수십만달러에 달하는 융자는 무차별적으로 집행됐다. 부동산경기가 피크에 이르면서 새로운 주택 수요처 발굴 필요성을 느낀 금융회사들이 저소득층을 주목한 탓이다. 금융회사들은 실적 경쟁을 하며 적극적인 방문영업에 나섰고 마이 홈은 남의 일로만 여기던 사람들이 권유에 속절없이 넘어갔다. 주택 폭탄 돌리기의 종착지였던 셈이다. 금융회사들로선 원리금이 상환되지 않으면 집을 팔아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했을 게 틀림없다. 하지만 그들은 거액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론을 얻어 구입한 주택은 대부분 몇 년 후 매물로 변할 수밖에 없고 그리 되면 집값도 하락세를 면키 어렵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모기지 업체들의 무분별한 방문영업행위는 길거리 모집까지 강행하다 카드대란을 일으켰던 과거 우리 카드업체들의 행태를 연상케 한다. 패니매 프레디맥 등 대형 모기지 업체에 공적자금을 투입키로 한 것 역시 국책은행을 동원해 카드사태를 수습했던 것을 그대로 빼닮았다. 하지만 파장은 훨씬 더 심각하다. 서브프라임 사태의 경우는 부동산이란 실물이 연관돼 있는데다 무수한 파생상품까지 만들어진 까닭이다. 지금도 수많은 금융업체가 위기에 직면해 있지만 부동산 가격이 추가로 하락한다면 또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짐작하기 어렵다.

서브프라임 사태가 더욱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것은 우리 부동산 시장 또한 내리막길로 접어든 까닭이다. 물론 우리의 경우는 LTV(주택담보인정비율) DTI(총부채상환비율) 같은 제도를 통해 관리하고 있는 만큼 사정이 좀 다르기는 하다. 하지만 금리상승과 함께 주택담보대출 상환 부담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등에선 연체율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부동산경기 침체로 중소건설업체들의 부도가 잇따르면서 금융권에 비상이 걸려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 모기지 업체들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리스크관리에 한층 신경을 써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