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이제 우리가 貧國돌아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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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진 <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
광복 63년을 되돌아보는 오늘 우리 대한민국은 짧은 기간 동안에 경제규모 세계 13위라는 놀라운 위상에 올라서 있다. 베이징에서 연이어 들려오는 대한건아들의 선전 소식도 고무적이다. 하지만 우리가 세계 속에서 국가위상과 국력에 걸맞은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생각해볼 여지가 많다. 지난 7월 초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고국을 다녀가면서 '낯이 뜨겁다'라는 감정적 표현을 쓰면서까지 전달하고자 했던 강한 메시지가 있다. 한국은 경제적 위상에 걸맞게 세계공동체에 대한 기여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개발도상국의 빈곤 해소를 위한 공적 개발원조(ODA)를 늘리고,세계 분쟁 지역에서의 평화유지군(PKO) 참여를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평소 필자에게 무슨 연구를 하느냐고 묻는 지인들에게 우리의 공적 개발원조가 얼마나 부끄러운 수준이고,이를 왜 높여야 하는지 열을 내서 이야기를 하면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최근 '아,네가 하던 이야기가 그거였구나'라는 뒤늦은 반응이나마 보이는 이들이 생겨나는 걸 보면 반 총장의 충격발언이 일정 부분 성과를 거둔 듯하다.
하지만 이런 관심이 냄비가 아닌,가마솥처럼 은근하고 꾸준히 지속되게 하기 위해선 우리가 세계공동체에 왜,무엇을 기여해야 할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1990년 일본의 1인당 소득이 약 1만9000달러였고,한국은 2007년에 약 2만달러에 도달했다. 당시 일본의 ODA 규모는 90억7000만달러였고,2007년 한국의 ODA는 약 6억8000만달러 정도였다. 대략 13분의 1 수준이다. 일본의 인구가 3배가량 많다는 사실을 고려해도 이미 17년 전 일본은 현재 우리보다 1인당 4배 이상 국제개발에 기여했으니 두 나라간 격차가 너무도 크다.
최근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로 끌고 가려는 일본의 오만할 정도의 자신감이 이렇게 수십년 동안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에서 나온 것이라고 단정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하지만 일본의 이러한 전방위 전략이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와 전혀 무관하다고 보는 것 또한 순진한 발상이다.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브랜드 가치로 계산한 국가위상이 한국은 겨우 29%인데 반해 일본은 224%에 달한다는 미래기획위원회의 보고가 있었다. 이를 고려할 때 만약 일본의 뜻대로 독도가 국제분쟁화할 경우 국제여론이 우리에게 유리하게 전개될 것이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한국의 국익(경제적,정치적)을 위해 개발원조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개발원조의 목적은 단순히 국익 증진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래서도 안된다. ODA를 비롯한 국제기여의 이념은 개도국이 우리가 거쳐온 것처럼 개발 또는 발전의 길을 가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반세기라는 짧은 기간에 원조를 바탕으로 해서 경제적,정치적 발전을 이룬 나라는 세계에서 우리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나라야말로 어느 선진국보다 개도국의 발전을 잘 도와줄 수 있다. ODA를 세계 평화에 기여한다는 정신으로 집행할 때 장기적으로 대한민국의 국격(國格)과 세계공동체에서의 정치적 위상이 높아지고,이는 바로 국가 브랜드로 연결된다. 즉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단기적 이익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장기적으로 공여국과 수원국이 함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것이 '계몽된 국익'개념에 기반한 개발원조다.
개발협력은 국제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한 기본적 요소다. 국제사회에 기여하는 책임있는 국가가 될 때 비로소 우리의 권리를 확실하게 주장하고 그 목소리가 공명을 일으킬 수 있으며 최근의 독도 분쟁과 같은 문제에서도 영토주권을 공고화할 수 있을 것이다.
광복 63년을 되돌아보는 오늘 우리 대한민국은 짧은 기간 동안에 경제규모 세계 13위라는 놀라운 위상에 올라서 있다. 베이징에서 연이어 들려오는 대한건아들의 선전 소식도 고무적이다. 하지만 우리가 세계 속에서 국가위상과 국력에 걸맞은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생각해볼 여지가 많다. 지난 7월 초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고국을 다녀가면서 '낯이 뜨겁다'라는 감정적 표현을 쓰면서까지 전달하고자 했던 강한 메시지가 있다. 한국은 경제적 위상에 걸맞게 세계공동체에 대한 기여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개발도상국의 빈곤 해소를 위한 공적 개발원조(ODA)를 늘리고,세계 분쟁 지역에서의 평화유지군(PKO) 참여를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평소 필자에게 무슨 연구를 하느냐고 묻는 지인들에게 우리의 공적 개발원조가 얼마나 부끄러운 수준이고,이를 왜 높여야 하는지 열을 내서 이야기를 하면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최근 '아,네가 하던 이야기가 그거였구나'라는 뒤늦은 반응이나마 보이는 이들이 생겨나는 걸 보면 반 총장의 충격발언이 일정 부분 성과를 거둔 듯하다.
하지만 이런 관심이 냄비가 아닌,가마솥처럼 은근하고 꾸준히 지속되게 하기 위해선 우리가 세계공동체에 왜,무엇을 기여해야 할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1990년 일본의 1인당 소득이 약 1만9000달러였고,한국은 2007년에 약 2만달러에 도달했다. 당시 일본의 ODA 규모는 90억7000만달러였고,2007년 한국의 ODA는 약 6억8000만달러 정도였다. 대략 13분의 1 수준이다. 일본의 인구가 3배가량 많다는 사실을 고려해도 이미 17년 전 일본은 현재 우리보다 1인당 4배 이상 국제개발에 기여했으니 두 나라간 격차가 너무도 크다.
최근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로 끌고 가려는 일본의 오만할 정도의 자신감이 이렇게 수십년 동안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에서 나온 것이라고 단정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하지만 일본의 이러한 전방위 전략이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와 전혀 무관하다고 보는 것 또한 순진한 발상이다.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브랜드 가치로 계산한 국가위상이 한국은 겨우 29%인데 반해 일본은 224%에 달한다는 미래기획위원회의 보고가 있었다. 이를 고려할 때 만약 일본의 뜻대로 독도가 국제분쟁화할 경우 국제여론이 우리에게 유리하게 전개될 것이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한국의 국익(경제적,정치적)을 위해 개발원조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개발원조의 목적은 단순히 국익 증진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래서도 안된다. ODA를 비롯한 국제기여의 이념은 개도국이 우리가 거쳐온 것처럼 개발 또는 발전의 길을 가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반세기라는 짧은 기간에 원조를 바탕으로 해서 경제적,정치적 발전을 이룬 나라는 세계에서 우리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나라야말로 어느 선진국보다 개도국의 발전을 잘 도와줄 수 있다. ODA를 세계 평화에 기여한다는 정신으로 집행할 때 장기적으로 대한민국의 국격(國格)과 세계공동체에서의 정치적 위상이 높아지고,이는 바로 국가 브랜드로 연결된다. 즉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단기적 이익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장기적으로 공여국과 수원국이 함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것이 '계몽된 국익'개념에 기반한 개발원조다.
개발협력은 국제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한 기본적 요소다. 국제사회에 기여하는 책임있는 국가가 될 때 비로소 우리의 권리를 확실하게 주장하고 그 목소리가 공명을 일으킬 수 있으며 최근의 독도 분쟁과 같은 문제에서도 영토주권을 공고화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