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묵묵할 때에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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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제법 아침저녁 공기가 시원해졌다. 여름날의 천둥이 큰 소리로 하늘을 지나가듯 가장 무더운 때도 서서히 지나가고 있다. 풀이 우거진 곳에는 풀벌레 소리가 여전히 많지만,머잖아 성글어질 것이다. 코스모스가 흔들리고 귀뚜라미는 섬돌에서 운다.
어제가 음력 칠월 보름,백중이었다. 풍속지를 읽어보면 백중에는 머슴을 쉬게 하고 머슴에게 돈을 주어 장에 가서 하루를 놀게 했다고 한다. 한 해의 농삿일도 거의 끝나 호미가 필요 없게 되었으니 호미를 씻어두고 술과 음식으로 하루를 흥겹게 노는 때도 이즈음이다. 불교에서는 백중을 '우란분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란'은 산스크리트어로 '거꾸로 매달린 것을 구해 주는 그릇'이란 뜻이다. 우란분절에는 망친(亡親)이 극락왕생하기를 기원하는 재(齋)를 올리는데,이런 전통에는 효심 많은 목련존자가 아귀의 세계에서 고통을 받고 있던 어머니를 구했다는 이야기가 바탕에 깔려 있다.
목련존자는 부처의 십대 제자 가운데 한 명으로 신통이 뛰어났다. 부처보다 나이가 많았으나 기적을 일으키는 힘이 대단했다. 그는 수행자 집단이 청정해야 하고,끊임없이 수행을 해야 한다고 믿었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마치 큰 바다가 서서히 비탈지고 점차 기울어져서 깊이를 얻는 것처럼 쉼 없이 정진할 때 얻어지는 것이라고 믿었다. 해서 목련존자는 수행자가 모여 잡담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면 엄지발가락으로 절 전체를 들어 올려 흔듦으로써 수행자의 게으름을 꾸짖었다.
어느날 신통력으로 목련존자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아귀의 세계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을 보았다. 목련존자가 몹시 괴로워하자 부처는 갖가지 음식과 다섯 가지 과일,등불,좌복 등을 스님들께 공양하면 어머니를 아귀의 세계로부터 구원할 수 있다고 일러 주었다. 《우란분경》은 목련존자가 정성을 다해 하안거를 마친 스님들을 공양함으로써 어머니를 구원한다는 줄거리를 담고 있다. 아무튼 우란분절은 삼천대천세계 모든 생명을 떠받들어 모시겠다는 서원(誓願)을 세우는 불교의 명절이다. 그런데 이 큰 명절을 맞은 불교계의 요즘 마음이 영 편하지가 않다. 정부의 종교편향이 해도 너무 한다는 것이다. 불교계가 반발하는 것이 무리가 아니란 지적이 사회 안팎에 많다. 종교편향 사건들을 일일이 여기서 열거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알 만한 이들은 소상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매우 염려스러운 점은 불교계가 과거 어느 정권보다 현 정부와의 소통에 대해 심각하게 회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종교편향 사건들을 문제 삼아도 정부는 손을 놓은 채 요지부동이라고 불교계는 말한다. 어쩌면 불교계는 그동안의 문제제기 방식이 너무 점잖아서 그런 것 아니냐고 스스로 회의할지도 모르겠다.
현명하고 관대하게 민심을 살피는 정부라면 구태여 민심이 큰소리로 말하지 않아도 민심의 움직임과 쏠림을 읽어 낼 수 있어야 한다. "묵묵할 때에도 말하고,말할 때에도 묵묵하다"는 불교경전의 말씀을 잘 새겨들을 일이다. 부처가 연꽃을 들어 올리자 가섭이 그 뜻을 알고 미소를 지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상대방 침묵의 뜻조차 짐작해 조심하는 것이 경애다. 더러운 곳에 뿌리를 내리고서도 맑고 청아한 꽃을 피워내는 게 연꽃이다. 연꽃은 피면서 거의 동시에 열매를 맺기 때문에 선인(善因)을 잘 닦으면 선과(善果)를 얻게 된다는 불교 가르침을 잘 설명하는 꽃이기도 하다. 그러나 연꽃을 설명하는 또 다른 멋진 비유는 '면상희이(面相熙怡)'란 말이다. 연꽃은 바라보는 모든 이에게 기쁜 마음이 들게 한다. 우리 사회도 이제는 서로를 연꽃처럼 바라볼 수는 없을까. 지금의 정부가 마음을 크게 고쳐서 할 일이 많다.
문태준 < 시인 >
어제가 음력 칠월 보름,백중이었다. 풍속지를 읽어보면 백중에는 머슴을 쉬게 하고 머슴에게 돈을 주어 장에 가서 하루를 놀게 했다고 한다. 한 해의 농삿일도 거의 끝나 호미가 필요 없게 되었으니 호미를 씻어두고 술과 음식으로 하루를 흥겹게 노는 때도 이즈음이다. 불교에서는 백중을 '우란분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란'은 산스크리트어로 '거꾸로 매달린 것을 구해 주는 그릇'이란 뜻이다. 우란분절에는 망친(亡親)이 극락왕생하기를 기원하는 재(齋)를 올리는데,이런 전통에는 효심 많은 목련존자가 아귀의 세계에서 고통을 받고 있던 어머니를 구했다는 이야기가 바탕에 깔려 있다.
목련존자는 부처의 십대 제자 가운데 한 명으로 신통이 뛰어났다. 부처보다 나이가 많았으나 기적을 일으키는 힘이 대단했다. 그는 수행자 집단이 청정해야 하고,끊임없이 수행을 해야 한다고 믿었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마치 큰 바다가 서서히 비탈지고 점차 기울어져서 깊이를 얻는 것처럼 쉼 없이 정진할 때 얻어지는 것이라고 믿었다. 해서 목련존자는 수행자가 모여 잡담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면 엄지발가락으로 절 전체를 들어 올려 흔듦으로써 수행자의 게으름을 꾸짖었다.
어느날 신통력으로 목련존자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아귀의 세계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을 보았다. 목련존자가 몹시 괴로워하자 부처는 갖가지 음식과 다섯 가지 과일,등불,좌복 등을 스님들께 공양하면 어머니를 아귀의 세계로부터 구원할 수 있다고 일러 주었다. 《우란분경》은 목련존자가 정성을 다해 하안거를 마친 스님들을 공양함으로써 어머니를 구원한다는 줄거리를 담고 있다. 아무튼 우란분절은 삼천대천세계 모든 생명을 떠받들어 모시겠다는 서원(誓願)을 세우는 불교의 명절이다. 그런데 이 큰 명절을 맞은 불교계의 요즘 마음이 영 편하지가 않다. 정부의 종교편향이 해도 너무 한다는 것이다. 불교계가 반발하는 것이 무리가 아니란 지적이 사회 안팎에 많다. 종교편향 사건들을 일일이 여기서 열거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알 만한 이들은 소상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매우 염려스러운 점은 불교계가 과거 어느 정권보다 현 정부와의 소통에 대해 심각하게 회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종교편향 사건들을 문제 삼아도 정부는 손을 놓은 채 요지부동이라고 불교계는 말한다. 어쩌면 불교계는 그동안의 문제제기 방식이 너무 점잖아서 그런 것 아니냐고 스스로 회의할지도 모르겠다.
현명하고 관대하게 민심을 살피는 정부라면 구태여 민심이 큰소리로 말하지 않아도 민심의 움직임과 쏠림을 읽어 낼 수 있어야 한다. "묵묵할 때에도 말하고,말할 때에도 묵묵하다"는 불교경전의 말씀을 잘 새겨들을 일이다. 부처가 연꽃을 들어 올리자 가섭이 그 뜻을 알고 미소를 지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상대방 침묵의 뜻조차 짐작해 조심하는 것이 경애다. 더러운 곳에 뿌리를 내리고서도 맑고 청아한 꽃을 피워내는 게 연꽃이다. 연꽃은 피면서 거의 동시에 열매를 맺기 때문에 선인(善因)을 잘 닦으면 선과(善果)를 얻게 된다는 불교 가르침을 잘 설명하는 꽃이기도 하다. 그러나 연꽃을 설명하는 또 다른 멋진 비유는 '면상희이(面相熙怡)'란 말이다. 연꽃은 바라보는 모든 이에게 기쁜 마음이 들게 한다. 우리 사회도 이제는 서로를 연꽃처럼 바라볼 수는 없을까. 지금의 정부가 마음을 크게 고쳐서 할 일이 많다.
문태준 <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