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는 '2040화가 그림' 지금 사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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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는 '2040화가 그림' 지금 사도 될까요?서울 여의도의 한 증권회사에 근무하는 박병진씨(45ㆍ가명)는 지난달 중순 1년 이상 갖고 있던 이우환씨의 작품‘조응’(130×162㎝)을 3억원에 팔았다.
대외 경제여건이 불투명해 경기가 당장 회복되기 어려운 데다 미술시장도 조정이 이어지고 있어 아직 가격이 덜 오른 작품으로 갈아타기 위해서다.그는 지난달 말 40대 작가박영근씨의 작품‘스피노자의 사과’‘양귀비’등 두 점을 4000만원에 샀다.서울인사동모화랑대표의 권유에 따른 것이었다.나머지는 언제든 현금으로 찾을 수 있는 통장에 넣어 놓았다.박씨는 또 다른 젊은 작가 작품을 사볼까 하고 요즘도 주말이면 가끔씩 인사동과 청담동 화랑가를 찾곤 한다.
천경자 이대원 김형근 김종학 사석원 등 인기 작가들의 작품값이 급락하는 가운데 독특한 개성을 지닌 20~40대 젊은 작가 작품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큰 손 컬렉터들이 관망세로 돌아서면서 미술시장이 조정을 받고 있는 데도 이들 젊은 작가 작품은 아직 '싸다'는 인식이 형성되면서 주요 화랑들이 잇따라 기획전을 마련하고 있고,일부 매진 사례도 나오고 있다. 시장이 불안한 상황에서 투자자들의 관심이 이미 작품값이 오른 인기 원로 작가나 중견 작가보다 '미래의 블루칩 작가'로 급속히 옮겨가고 있는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젊은 작가 200여명 불꽃 경쟁국내외 경매시장과 아트페어에서 주목받고 있는 젊은 작가는 약 200여명.이 가운데 홍경택 강형구 김동유 서도호 최소영 안성하 김덕용 김준 배준성 이정웅 최우람 등 50여 명은 미국ㆍ홍콩ㆍ유럽시장에서 인정받는 신진 작가다. 이들은 작품성과 함께 특이한 소재와 참신한 제작기법으로 해외 컬렉터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미국ㆍ유럽ㆍ아시아권 컬렉터들 사이에 이들 작품을 찾는 사람이 많다보니 그림값도 치솟고 있다. 홍경택씨의 경우 지난해 5월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 출품된 '연필Ⅰ'(259×581㎝)이 무려 7억7760만원에 낙찰돼 국내 20~40대 작가 가운데 경매 최고가를 기록했다.
또 서도호의 2004년작 설치 작품 '썸-원'은 뉴욕 그리스티 경매에서 4억9500만원에 팔렸고,김동유의 '장미와 폭발'(4억2000만원),최소영의 2003년작 '도시'(2억5000만원),강형구의 유화 '워홀'(5억원),김덕용의 '시간과 함께'(5240만원),지용호의 '디어헤드'(3630만원),데비 한의 '움직이는 여신'(5200만원),임동식의 '화가와 자연'(5700만원),윤종석의 '흐르는 가벼움 '(3300만원) 등도 높은 가격에 낙찰됐다. 국내 젊은 작가들의 작품은 올 상반기에만 홍콩 및 뉴욕 크리스티를 비롯해 싱가포르 라라사티,인도네시아 보르도뷰,대만 라베넬 등 해외 경매시장에서 약 50억원어치(낙찰수수료 포함)가 판매됐다. 홍콩 경매시장의 화려한 '실적'을 기반으로 서울 인사동 청담동 등 화랑가에서 열리고 있는 이들 작가들의 전시는 침체시장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높은 편이다. 최근 들어 작품전을 가진 김성진(갤러리현대) 임태규(LVS갤러리) 데비한(터치아트) 안성하 지용호 홍지연 이동재 이정웅(가나아트갤러리) 임동식 금중기(이화익갤러리) 윤종석(아트사이트) 이이남(박여숙화랑) 윤병락(노화랑) 이호련(아카갤러리) 이동기(갤러리2) 박성민(박영덕화랑) 권기수(박여숙화랑) 강유진 고산금 이길우 이상현 천성명 신영미 이우림(선화랑) 등 20여명의 작품은 모두 팔려 나갔다.
경매시장과 아트페어에서도 이들 작품이 인기를 끌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6월 서울옥션이 젊은 작가들의 작품만 모아 경매한 '커팅 엣지'에선 강유진 권두현 김준 박성민 민성식 여동현 이호련 홍지연 등 59명의 출품작 59점 가운데 56점이 팔려 낙찰률 94.9%를 기록했다.
또 지난 7월 서울오픈아트페어를 비롯해 신세계백화점의 '제1회 신세계 화랑미술제',대구의 국제아트페어인'제2회 아트대구',오픈옥션의 '골든아이아트페어' 등 그림 5일장에 수천명의 직장인이 몰려 20~40대 작가 작품만 찾는 분위기도 연출됐다. 화랑들의 치열한 유치전
화랑의 젊은 작가 유치 경쟁은 대학을 갓 졸업한 풋내기 작가들에게까지 손을 내밀 정도.갤러리 현대는 김성진 박준범 변웅필 민성식 정재호 오용석 이윤진 최우람씨 등을 전면에 내세우고 '옐로칩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지난 6월 사간동에 유망작가 전시공간 '두아트'를 개관하고 본격적으로 '미래의 유망주' 만들기에 들어갔다. 노화랑 역시 이강욱 송명진 박형진 박미나 박훈성 윤병락 김찬일씨 등을 확보해 릴레이 개인전을 열고 있다.
또 PKM갤러리는 함진 배영환에 이어 최근엔 김상길을 끌어 들였고,아라리오 갤러리는 2006년부터 강형구 이형구 고동희 권오상 이지현씨 등 15명을 지원하고 있다.
이 밖에 박여숙화랑(임만혁 권부문 조현익 양문기 권기수 이이남 박소현 홍경표),박영덕화랑(장기영 박성민 한영옥),이화익갤러리(김동유 김덕용 최영걸 김정선 황혜선 문경원 임자혁 최병진 김민주),아트사이드(손진아 윤종석 강영길 한효석 하태임 윤기원),가나아트갤러리(안성하 도성욱 이동재 백승우),카이스갤러리(최소영 홍경택 박상희 이경미) 등도 비교적 작품성이 뛰어난 작가들을 확보해 작품전을 열고 있다.
젊은 작가전도 줄을 잇고 있다. 박여숙화랑은 개관 이래 첫 젊은 작가 그룹전인 '사과따러 가자'전을 열고 구성연 김준식 등 9명의 작품 40여점을 내건다.
서울 삼성동 아트컴퍼니 인터알리아 '2008 IYAP'전을 비롯해 노화랑의 김찬일 개인전,선컨템포러리의 임상빈 개인전,표화랑의 백기은 개인전,천안 아라리오갤러리의 이용백 개인전,관훈갤러리의 '상상과 충동'전,가나아트갤러리의 '아티스트 맵핑전',카이스 갤러리의 '상상 속의 눈속임'전,박영덕화랑의 장기영 개인전,카이스갤러리 홍경택 개인전 등 연말까지 60여 곳에서 1500점 이상의 작품이 쏟아져 나온다.
일부 젊은 작가들이 아직 검증되지 않은 작품으로 시장에서 승부하다보니 너무 상업성에 치우쳐 자칫 '반짝 스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또 일부 화랑들이 국내 판매를 위해 해외경매와 아트페어에서 이들의 '몸값'을 올린다는 소문도 나돈다. 김창실 선화랑 대표는 "1990년대 초 미술시장이 호황이었을 때에도 무려 200여명에 달하는 젊은 작가들이 주목을 받았지만 현재 대부분이 시장에서 사라진 상태"라며 "한국 화단에는 일부 블루칩 원로 작가와 젊은 작가들만 있을 뿐 중견작가가 없어 향후시장 발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