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트리 리포트] 호주 (2) 기러기 엄마들의 시름 ‥ 호주달러 강세로 송금액 30% 허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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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민들 "환란때보다 더 힘들다"호주 시드니에서 자동차로 20여분을 달리면 닿는 뉴 사우스 웨일스 주의 소도시 스트라스필드(Strathfield).시드니와 멀지 않고 대중교통인 열차로 시드니를 왕래할 수 있는데다 학군도 좋아 코리아 타운으로 자리잡은 지역이다.
스트라스필드역 광장으로 이어지는 큰 도로 양편에는 한글 상호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광장 바로 옆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 중인 한 여학생은 "영어로 상호가 된 상점들도 대부분 한국 교민들이 운영하는 곳"이라며 "호주 달러가 비싸지면서 어학연수생,유학생,기러기 엄마들이 씀씀이를 줄여 경영난을 겪는 곳이 많다"고 귀띔했다. ◆'허리띠' 졸라맨 기러기 엄마들
호주중앙은행(RBA)이 발표하는 '국별 일일 환율'에 따르면 미국 달러화에 대한 호주달러화의 환율은 21일 현재 0.8729 호주달러.지난달 16일의 0.9786 호주달러와 비교하면 다소 낮아졌지만 0.9 호주달러 수준으로 다시 올라설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호주 외환시장으로 유입되는 자원달러가 계속 늘어나면서 호주달러의 강세를 자극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대부분의 공산품을 수입해서 쓰는 경제구조를 감안,호주 정부가 수입물가를 잡기 위해 '강한 호주달러' 정책을 지속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호주달러의 강세로 원화에 대한 환율은 지난해 8월17일 호주달러당 743.32원에서 지난달 2일 1007.37원까지 솟구쳤다. 100 호주달러 환전에 7만4332원 들던 것이 10만737원으로 35.5% 늘어난 셈이다. 스트라스필드역 광장에서 20여m 떨어진 곳에 있는 한국 식당 '타미 레스토랑'.중년 여성 6명이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기다리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 지역 학교의 사친회에서 만나 계를 만들면서 만나는 사이였다. 화제는 당연히 환율이었다. "호주달러가 비싸지면서 한국으로부터 송금받는 돈을 앉은 자리에서 고스란히 30% 이상 날려 버리고 있다"는 하소연에서부터 "아이 학비나 생필품 구입비는 반드시 지출해야 하므로 외식이나 계모임 횟수를 크게 줄이고 시드니 외출도 자제하고 있다"는 절약사례 소개까지 다양한 얘기들이 쏟아졌다.
스트라스필드에선 호주달러가 약세로 돌아서지 않을까 관망하던 한국의 아빠가 2주간이나 송금을 늦추는 바람에 매주 내야 하는 집세를 못 내 계약파기 위기까지 몰리며 곤욕을 치른 한 기러기 엄마가 화제다.
◆직격탄 맞은 교민사회
연수생,유학생,기러기 엄마들이 '내핍 모드'로 돌아서면서 호주 교민 사회도 큰 영향을 받고 있다. 김병일 시드니 시티 상우회장(대한관광여행사 회장)은 "호주 교민들의 중요한 사업 기반은 연수생,유학생,기러기 엄마들의 소비 지출"이라며 "호주 달러 강세로 송금받는 원화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은 사업 기반이 그만큼 취약해졌다는 얘기가 된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호주 달러의 초강세로 한국에서 호주로 오는 관광객은 올해 50% 이상 감소한 4만~5만명 정도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며 "외환위기 때보다도 더 어렵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교민들이 운용하는 시드니 소재 여행사는 한때 35개에 달했으나 지금은 6~7개 정도만 활동하고 있다"며 "일부 여행사들은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사무실과 전화를 공동 사용하는 궁여지책까지 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호주 교민들을 상대로 하는 비즈니스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직원 7명을 두고 스트라스필드에서 부동산 중개업체 J&J 리얼티 파트너스를 운영하고 있는 정문호 사장은 "예전엔 이틀에 한 채 꼴로 주택 거래를 성사시켰는데 올해엔 매기가 뚝 끊겨 1주일에 한 건을 매매하면 다행일 정도"라며 "지금은 주택 매매 문의가 들어와도 어드바이스조차 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민 생활 12년 만에 이렇게 어렵기는 처음"이라며 "호주 집을 팔아서 한국에 아파트를 사고 싶다는 생각까지 든다"고 했다. 교민들도 호주 정부의 고금리 정책으로 주택구입자금 이자부담이 커지는 '모기지 스트레스'를 겪기는 마찬가지다. 시드니 샹그릴라호텔의 음료담당 부 매니저인 교민 조영수씨는 2004년 맞벌이를 믿고 어렵게 마련한 집을 최근 내놨다. 자신의 월급은 전액 은행에 넣는 조건으로 주택구입자금을 빌려 구입한 46만호주달러짜리 집이 대출금리가 7.6%에서 9.7%로 치솟으면서 애물단지가 됐기 때문이다.
어학연수 워킹홀리데이 등을 알선해 주고 있는 대한교육센터 김수정 부장은 "시외버스 타듯이 오는 워킹홀리데이는 호주달러 강세로 급감했다"고 설명했다. 김 부장은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고 돌아가는 사례도 많다"며 "올 들어 편도 비행티켓으로 호주를 떠난 학생 6000여명도 비슷한 사례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호주달러 강세로 돈을 버는 신종 사업도 생겼다. 호주달러를 원화로 바꿔 한국으로 보내주는 '역송금'이 그것이다. 강세인 호주달러를 원화로 환전해 환차익을 얻고,이 돈을 한국 부동산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세무당국에 재원이 노출되지 않아 은행보다 다소 높은 수수료를 내고 이용하는 사람이 많다는 전언이다. 한 교민은 "역송금 안내문이 교민 상가 곳곳에 나붙고 한글판 신문에도 광고가 늘어나는 것을 보면 장사가 잘되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시드니=글.사진 박기호 기자 kh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