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외환은행, 이제 매듭지을 때

김병주 <서강대 명예교수ㆍ경제학>

윤동주의 '서시(序詩)'처럼 "한 점 부끄럼 없이" 세상을 살 수는 없다. 이 땅에서 "금융 공부합네"하고 철밥통 차고 살던 필자의 일생일대 회한은 1997년 말 환란이다. 당시 집단 이기주의 벽에 막혀 금융개혁 작업을 성공시키지 못하고 좌절했던 기억은 차라리 악몽이다. 금융권의 지급결제 체제가 총체적으로 마비되던 상황에서 최후의 대출자 기능을 끝내 발동 않던 한국은행이 작년 노던록 은행을 구제한 영국 중앙은행과 금년 베어스스턴 은행과 패니매ㆍ프레디맥(주택금융대출회사) 정리에 적극 나선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를 보고 역시 후회가 있어야 한다. 약소국에 금기사항이라던 대마불사가 강대국에는 통한다고 불평한 들 소용없다. 대형 금융화재 발생 시에는 중앙은행이 소방수ㆍ청소원 역할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을 바로 보아야 한다.

환란 후 은행 부문은 인적ㆍ물적자원의 심각한 손실을 치르면서 구조조정이 크게 진척돼 면모를 일신했으나 외환은행이 아직 미해결 과제로 남아있다. 2000년 가을 은행경영평가 작업을 맡아 당시 대상은행들의 재무상태를 들여다 보며 필자는 외환은행 문제의 심각성을 직감했었다. 그 후 카드대란을 맞아 경영애로가 더욱 심각해지자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국내은행들이 유동성위기 탈출에 코가 빠졌던 2003년 상황에서 외국펀드 론스타가 무경쟁 인수했다. HSBC는 '유기적 성장'(자체 점포망 확산) 전략을 선택하고 물러났기 때문이다. 당시 언론에서 왜 하필 펀드냐는 소수의견이 묵인하는 다수의견에 묻혔었다. 문제 발단은 론스타의 이익 챙기기,과세불가,그리고 국민감정이다. 론스타는 2003년 9월 말 외환은행 51% 지분을 1조3833억원,그 후 14.2% 지분을 7715억원에 추가로 사들여 도합 2조1548억원을 지불했다. 인수 후 경영이 개선되자 3년 내 퇴장을 기본으로 하는 론스타의 헤지펀드 본능이 발동했다. 2007년 6월 13.8% 지분(1조1927억원)을 블록세일해 약 51%를 보유하고 있다. 론스타가 인수(리스크 테이킹) 이후 손실을 입었다면 퇴출은 순조로웠을 것이다. 차익,그것도 막대한 차익을 챙긴다는 데 국민정서가 자극되었다. 국민은행과의 계약이 지연 파기된 후 2007년 9월 마음을 고쳐먹은 HSBC와 지분 전부를 5조9375억원에 넘기기로 계약했다. 론스타가 줄잡아 대략 5조3200억원을 벌게 되자,'먹튀'라고 국민정서가 발끈했다. 하지만 국제금융시장과 법정에서 정서는 무기력하다. 외환은행 관련 두 개의 소송사건 중 카드 주가조작 사건은 이미 무죄가 선고되었고.헐값매각소송은 조만간 1심판결이 나올 예정이다.

정부는 법적 불확실을 구실로 문제를 표류시키고 있다. 헐값 시비는 사후적 관점에서 배아픈 국민정서 때문이지 그것이 인수자체를 원인 무효화시킬 수는 없다. 당시 정부 실무라인의 윗선들은 모두 승승장구하고 담당국장만을 잡고 괴롭히는 재판과정은 카프카의 소설 소재감이다.

얼마 전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산업은행 등 국내은행에 지분참여를 요청해 왔다. 시중은행들이 개도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은행인수에 성공하고 있다. 한편 론스타는 독일 중소기업 전문은행 IKB를 8월21일 인수했다. 지구는 돌고 시장은 변한다. 외국투자자의 한국혐오증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계기는 외환은행 매듭풀기에 달려 있다. 다행히 HSBC는 우량은행이어서 경쟁상대가 될 만하다. 당국은 눈치코치보지 말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 당해 은행원들의 심리적 지옥행군도 끝내야 한다. 이미 다리 밑 아래 흘러간 강물을 되돌릴 수 없다. 한국금융이 잎새에 이는 바람에 떨기는커녕 강풍도 이길 만큼 강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