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藥도 보기 좋아야" 성형 바람

제약업계에 의약품 케이스 '성형 바람'이 불고 있다. 하얀 종이 상자에 약품명과 효능만 밋밋하게 새기는 건 옛말.지퍼 달린 비닐봉투가 겉포장재가 되는가 하면,보석함으로도 손색이 없는 고급 상자에 약을 담기도 한다. 어린이용 의약품의 패키지는 아예 장난감으로 쓸 수 있도록 제작할 정도다.

유유제약은 1일 판매에 들어간 해열진통 소염제 '파나펜에스'를 지퍼가 달린 비닐봉투에 담았다. 주방에서 많이 쓰는 '지퍼락'이 의약품 겉포장재로 쓰이기는 국내에서 처음이다. 지퍼를 닫으면 공기와의 접촉이 차단되는 만큼 변질을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종이 케이스에 비해 휴대도 간편하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한국애보트의 비만치료제인 '리덕틸'은 지난 2월부터 꽃과 나뭇잎이 화사하게 새겨진 고급 상자에 담긴 채 판매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적절한 체중 감량을 통해 화사한 여성으로 다시 태어나길 기원한다는 의미를 새긴 것"이라며 "패키지는 보석 등 귀중품 보관함으로 쓰기에 적합하다"고 말했다.

한독약품의 바르는 여드름치료제인 '크레오신-T'는 언뜻 보면 화장품을 연상케 한다. 주요 고객인 10~20대 여성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마치 화장품을 사용하는 느낌이 나도록 용기를 꾸며달라는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한독약품은 이 밖에 당뇨병 치료제 '아마릴'과 고혈압 치료제인 '셀렉톨'의 약 형태를 각각 눈사람 및 하트 모양으로 제작하는 등 약품 디자인을 차별화했다. 어린이 영양제는 이미 '디자인 격전장'으로 변모한 상태다. 조아제약의 '비타짱구 츄어블정'이 대표적인 예.이 제품의 겉포장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커다란 짱구 인형이며,저금통으로 쓸 수 있도록 모자 가운데 부분에 동전 구멍을 팠다. 알약 형태의 영양제도 짱구 얼굴 모양으로 만들었다. 회사 관계자는 "디자인이 워낙 특이한 데다 '어린이 짱구 마니아'들의 열렬한 호응 덕분에 출시 1년여 만에 취급 약국 수가 2000개에서 5000개로 늘었다"고 말했다.

5세 이하 영유아에게 심각한 설사를 유발하는 로타바이러스 백신인 한국MSD의 '로타텍'은 아이들이 거부감 없이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쭈쭈바' 모양으로 만들었다.

한미약품의 녹내장 치료제인 '라타로 점안액'은 외출할 때도 적정 보관온도(섭씨 2~8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휴대용 냉장케이스가 함께 지급된다. 업계 관계자는 "약효에 큰 차이가 없다면 개별 의약품의 브랜드 파워와 함께 디자인이 구매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로 떠올랐다"며 "현재 약국에서만 살 수 있는 일반의약품 중 상당수가 순차적으로 편의점 할인점 등에서도 판매될 예정인 만큼 제약업계의 '디자인 경영'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