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 美대선에 걸린 FTA 운명

결과론적이지만 조지 W 부시 정부는 참으로 영악했고,이명박 정부는 참으로 순진했다. 민주당과 공화당 전당대회가 내뿜어대는 열기로 가득한 미국 대선 현장의 한복판에서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처한 상황을 짚어볼수록 머리 속에 파고드는 생각이다.

미 무역대표부(USTR)의 수전 슈워브 대표가 양국 간 쇠고기 협상이 타결된 지난 4월18일 발표한 내용을 보자."한국으로 쇠고기 수출을 전면 재개하게 돼 미 의회의 한ㆍ미 FTA 비준동의안 처리 심의에 최대 걸림돌이 제거됐다….두 나라 사이의 FTA는 미국이 15년 만에 체결한 가장 의미 있는 협정이며 미국 근로자와 농민,목축업자,기업들에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줄 것이다…."쇠고기 협상과 FTA의 실무협상 당사자인 슈워브 대표는 쇠고기 협상 타결로 멍석을 깔아줬으니 미 의회가 FTA 비준동의안을 일사천리로 처리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그런 섣부른 기대는 과녁을 한참이나 빗나갔다. 몸살을 앓았던 촛불집회와 쇠고기 추가협상 이후 남은 건 불투명한 한ㆍ미 FTA의 운명이다.

내년 1월 임기 만료를 앞둔 부시 정부는 그나마 한국의 쇠고기 시장을 챙겼으나,자신만만했던 이명박 정부가 얻은 건 지지율 하락과 여론에 등 떠밀려 확보한 쇠고기 안전성뿐이었다. 부시 정부는 미안한지 '기회의 창문'을 부쩍 거론한다. 11월4일 미 대선이 끝난 뒤 내년 1월 새 정부가 들어서기까지 미 의회의 레임덕 회기에 한ㆍ미 FTA 비준동의안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연일 립서비스다.

하지만 FTA는 미 대선 레이스의 향배와 미 민주당의 입장에 의해 운명이 갈릴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외줄타기 신세다. 민주당 대선후보인 버락 오바마는 한국이 자동차 시장을 더 열어야 하고,미국 근로자들의 일자리 손실을 막아야 한다며 일찌감치 한ㆍ미 FTA가 "결함 많은 협정"이라고 반대를 표명했다. 의사봉을 쥔 같은 당 소속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오바마와 같은 이유를 들어 한ㆍ미 FTA 처리를 가로막고 있다. 공화당 대선후보인 존 매케인은 적극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설사 그가 당선되더라도 민주당이 쉽게 처리해줄지 의문이다. 민주당은 공화당 정권 8년간의 경제실정을 업고 내년 차기 의회 구성 때 상ㆍ하원 의석수의 각각 3분의 2를 넘는 초다수당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워싱턴 정가의 지배적인 관측이다.

우리 정부로선 속이 쓰리지만 미국 내 여론이 한ㆍ미 FTA에 유리하게 조성되도록 총력 설득전에 나서야 한다. 미국 연근해 석유 추가 시추를 강하게 반대해오던 오바마와 펠로시 의장이 최근 여론의 힘을 못 이긴 척 잇따라 찬성으로 돌아선 대목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세계 최대인 미국 시장에서 한국산 제품의 점유율은 7위에서 올 상반기 9위로 밀려났다. 한국 내 국회 비준동의 문제와는 별개로 오바마,펠로시가 안 되면 미 민주당 의원들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늘어져야 할 판이다.

워싱턴 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