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집값 떨어뜨린 '님비'

"버스 지나간 다음에 손흔들어봐야 소용없다"는 말이 있다. 서울 금천구 시흥동과 관악구 신림동 주민들이 처한 현 상황이 딱 그 모양새다.

주민들을 '지나가버린' 시내버스는 시흥2동과 신림6ㆍ9ㆍ10동에서 지하철2호선 서울대입구역을 거쳐 강남까지 이어주던 5412번.출퇴근 시간에는 발디딜틈 조차 없는 인기노선이었던 이 버스는 지난달 초 희한하게도 '사업성 결여'를 이유로 폐지됐다. 여기에는 시흥동과 신림동 주민들의 "내 땅에 혐오시설은 안된다"는'님비(NIMBYㆍNot In My Backyard)'가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야기의 발단은 2005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차고지를 서울대 인근 신림2동의 한 부지에 두고 있었던 5412번은 계약기간 만료로 새로운 부지가 필요했다. 버스회사는 노선 인근인 시흥2동과 신림6ㆍ9ㆍ10동 일대에서 차고지 부지를 물색했으나 주민들의 반대가 심했다. 버스 소음과 매연으로 집값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버스회사는 노선과 거리가 12㎞가량 떨어진 양천구 신정동에 서울시 공영차고지가 완공되면서 이곳으로 자리를 옮겨야만 했다. 이에 따라 5412번 버스는 시흥ㆍ신림동에서 신정동까지를 매일 빈차로 왕복해야 했고,이를 견디다 못한 버스회사는 노선 폐지를 결정했다.

시흥ㆍ신림동 주민들로서는 차고지 설립을 막다가 졸지에 '황금노선'의 버스를 잃게 된 셈이다. 그 결과 이들 지역 집값도 하락조짐을 보이고 있다. 시흥2동 S공인 관계자는 "집을 알아보는 손님들이 거의 사라졌다"며 "출퇴근하는 주민들은 교통이 불편해져 이사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차고지가 들어간 양천구 신정동은 5412번을 대신해 이곳에서 강남까지 이어지는 643번이 신설돼 오히려 전월세 수요가 늘고 있다는 것이 현지 중개업계의 전언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차고지가 시흥ㆍ신림동에 생기면 5412번이 다시 생길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시흥ㆍ신림동 주민들이 "버스는 좋지만 집값 떨어뜨리는 버스 차고지는 안 된다"는 고집을 버리고 "버스가 다니려면 버스가 머무는 차고지가 있어야 한다"는 상식을 받아들일지 주목된다.

임도원 건설부동산부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