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자금 '상품서 달러로' 대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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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ㆍ金ㆍ곡물값 급락 … 유로대비 달러가짗 7개월만에 최고
국제 상품시장에 몰렸던 뭉칫돈들이 대거 빠져나와 달러자산으로 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유가를 비롯,금 은 동 등 원자재와 밀 등 농산물 가격이 동시에 급락한 반면 달러 가치는 유로화 대비 7개월 만에 최고치로 뛰는 등 연일 강세 행진이다. 2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NYMEX)에서 10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원유(WTI)는 지난 주말보다 5.75달러(5%) 하락한 배럴당 109.7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7월11일 고점 대비(배럴당 147.27달러) 25% 하락한 것이다. 한국이 주로 도입하는 두바이산 원유 현물가도 하루 새 사상 최대인 9.99달러 빠져 101.65달러로 마감했다.
국제유가가 이처럼 약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고 있는 데다 △세계 경기침체로 석유 수요가 감소하고 있으며 △최근 미국에 몰아닥친 허리케인 '구스타브'가 멕시코만 원유 및 가스생산 설비에 별다른 피해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생산을 늘린 것도 한몫했다.
금 은 백금 동 밀 등 다른 주요 상품가격도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다. 이날 NYMEX에서 금 시세는 장중 온스당 40달러까지 폭락했다가 낙폭을 줄여 24.7달러(3%) 하락한 810.5달러로 마감했다. 백금은 4.86%,은은 3.6%,동은 3.3%씩 가격이 떨어졌다. 이 밖에 밀과 옥수수 가격도 각각 2% 이상 하락했다. 상품 거품이 꺼지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며 투자자들이 서둘러 상품관련 펀드에서 자금을 빼간데 따른 것이다. 미 정부가 상품 투기세력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것도 투자심리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상품에서 빠져 나온 글로벌 자금은 미 달러화 투자에 유입되며 달러 가치를 밀어올리고 있다. 이날 뉴욕 외환시장에서 달러화 가치는 유로 대비 장중 1.4384달러까지 뛰었다. 파운드화에 대해선 영국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장중 1.09% 급등했다가 1.7839달러로 마감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유럽 성장률 전망은 낮춘 반면 미국 성장률을 높인 것도 달러 강세 요인으로 작용했다.
달러 강세는 다시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으로서의 상품 투자 매력을 급격히 떨어뜨리며 상품시장으로부터의 자금 유출을 가속화시키는 사이클을 만들고 있다. 투자회사인 킷코블리언딜러스 몬트리올의 존 내들러 애널리스트는 "상품 투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상품 펀드에서 돈들이 빠져나가고 있다"며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뉴욕멜론은행에 따르면 투자자들이 지난 8월 한 달간 매입한 달러화는 최근 12개월 평균치의 4배에 달한 것으로 추산됐다. 이에 따라 세계 주요 투자은행들은 달러화 전망을 속속 수정하고 있다. 스탠다드차타드는 달러화가 내년 1분기에는 유로당 1.36달러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스탠다드차타드의 기존 전망치는 올해 말 1.49달러,내년 1분기 1.42달러였다. BNP파리바은행도 연말 유로화에 대한 달러 환율을 기존 1.45달러에서 1.42달러로,파운드화에 대한 달러 환율은 1.88달러에서 1.71달러로 각각 수정했다.
달러 강세는 아시아 각국의 통화가치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올 들어 한국 원화는 미 달러화 대비 17.4% 이상 떨어졌으며,필리핀 페소와 인도 루피화도 각각 11.42%,11.28% 하락했다. 태국 바트화 가치는 이날 달러당 34.52바트로 13개월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ABN암로은행은 "아시아 지역 통화가 향후 1년 안에 추가로 12%가량 더 하락할 수 있다"며 "특히 한국의 원화가 가장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중앙은행들은 시장에 달러를 쏟아부으며 '환율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강달러 분위기를 돌려놓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한편 유가 전망을 두고는 전문가들 사이에 의견이 다소 엇갈렸다. 도이체방크는 배럴당 60∼80달러로 떨어질 것으로 보는 데 반해 골드만삭스는 연말께 150달러까지 다시 반등할 것으로 예상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유병연 기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