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월街] "美금융시스템 뿌리째 흔들렸다"

'피의 일요일(Bloody Sunday).'14일(현지시간) CNBC가 리먼브러더스와 메릴린치 사태를 긴급 타전하며 전한 헤드라인이다. CNBC는 "월가가 금융 쓰나미에 결정타를 입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월스트리트 인터넷판도 "일요일,미 금융시스템이 뿌리째 흔들렸다(The US financial system was shaken to its core)"고 전했다. 베어스턴스에 이어 6개월 만에 5개 대형 투자은행 중 3개가 사라지는 셈이다. 메릴린치의 매각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이었다. 이로인해 주가지수선물과 달러가치가 폭락하고 있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은 "1세기에 한 번 발생할 만한 사건"이라며 "더 많은 금융사들이 붕괴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브프라임 손실 140억달러 달한 메릴린치

메릴린치가 전격적으로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합병하기로 한 것은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금융위기가 확산되면 독자 생존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에 따른 신용경색으로 메릴린치가 입은 손실은 이 은행이 지난 36년간 달성한 이익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140억달러에 달했다. 지금까지 기록한 손실로 따지면 투자은행 중 최고 수준이다. 시장에서는 3분기에도 무더기 손실이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됐다.

이 과정에서 헨리 폴슨 미 재무 장관 등이 월가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를 소환한 자리에서 리먼과 함께 메릴린치 문제도 논의하자고 제안하면서 BOA가 중개 영업 분야에서 강점이 있는 메릴린치를 인수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미국 언론은 94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메릴린치 이사회 멤버들 중 단 한 명도 합병에 반대한 사람이 없었을 만큼 상황은 긴박했던 것으로 전했다.

리처드 보브 라덴버그탈만 애널리스트는 "양사 간 합병은 바람직한 결정"이라며 "리먼이 파산하면 다음은 메릴린치가 공격을 받을 게 분명했다"고 말했다.

◆FRB 금리회의에 주목메릴린치와 BOA의 합병은 뉴욕 증시에서 호재로 평가될 전망이지만 리먼의 파산신청에 따른 불안감을 가라앉히게 될지 불확실하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월가 대출 프로그램인 '프라이머리 딜러대출(PDCF)' 담보를 종전 투자등급 채권에서 주식으로 확대했으며,'기간부 국채임대대출(TSLF)' 담보도 모든 투자등급 채권까지 포함토록 하는 등 월가에 대한 유동성 공급을 2000억달러로 늘리기로 했다. 또 10개 은행은 상호간 유동성 지원을 위해 700억달러의 펀드를 조성키로 합의했다.

이런 가운데 FRB는 16일(현지시간) 공개시장위원회(FOMC)를 개최,기준금리를 결정한다. 지난주 패니메이와 프레디맥 등 양대 모기지사의 국유화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안정되기는커녕 이번에는 리먼브러더스까지 가세했다.

◆월가 지각변동월가의 지각변동은 거세질 전망이다. 지난 3월 베어스턴스를 인수한 JP모건을 제치고 월가 1위는 BOA로 굳혀지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FRB가 리먼의 파산을 '허용'한 것을 계기로 한번 밀리면 끝장나는 본격적 생존게임이 시작됐다고 분석했다.

메릴린치를 인수하면 BOA의 자산은 씨티그룹의 2조1200억달러를 넘어선다. 현재 자산이 1조7600억달러 수준으로,메릴린치의 자산 1조200억달러를 더하면 2조7800억달러의 거대 공룡이 탄생하게 된다. 메릴린치 리먼의 탈락으로 투자은행 부문에서는 골드만삭스의 독주가 강화될 전망이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