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12년 제자리 물가 비결은 '경쟁'


일본 물가가 12년 동안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불황 장기화로 인한 소비 위축 외에도 과감한 수입 개방과 규제 완화를 통한 시장 경쟁 활성화 덕분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는 21일 '일본 물가관리 정책의 시사점과 과제'라는 보고서에서 "일본은 1995년 물가가 지난해까지 같은 수준을 이어오고 있다"며 "이는 일본 정부의 글로벌화,규제 완화,유통 합리화 등 경쟁환경 조성이 큰 몫을 했다"고 진단했다. 일본은 1985년 미ㆍ일 간 무역역조 개선을 위한 레이건 행정부와의 '플라자 합의' 이후 엔화 가치가 급속히 절상되는 엔고 현상이 나타나면서 국내외 가격차가 확대되고 물가 불안이 초래되는 등 큰 위기를 맞았다. 엔고는 또 고비용 경제구조를 고착시켜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수입 문호를 과감하게 개방,물가 안정을 유도한 게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보고서는 "글로벌화 진전과 엔화 강세로 개도국으로부터 값싼 제품의 수입이 늘어나면서 일본-아시아 국가 간 국제 분업체제가 확립됐다"며 "개도국 제품의 역수입은 일본 제품과의 경쟁을 유도해 물가를 낮추게 됐다"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는 규제 완화에도 적극 나섰다. 1991년 쇠고기 수입 쿼터를 철폐했으며 1998년에는 공기업 민영화를 통해 경쟁을 촉진하고 전기와 도시가스,전화 통화료를 낮췄다. 이런 노력으로 일본은 1997년 1.7%에 달했던 물가 상승률이 이듬해 0.3%로 줄어들고 2년 뒤인 1999년에는 물가 상승률을 0%대로 잡는 데 성공했다. 뿐만 아니라 점포 없이 물건을 판매할 수 있는 인터넷 쇼핑과 통신 판매,방문 판매 등의 유통 경로를 확대해 유통 단계에서 빚어지는 물가상승 요인도 잡았다.

대한상의는 이 같은 연구를 토대로 최근 연초부터 이어진 원자재값 상승과 고유가 등으로 인한 물가상승 압력을 단기적인 물가 정책보다는 중ㆍ장기적 관점에서 풀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한상의는 "정부는 시장 개방과 규제 완화에 나서 경쟁 환경을 조성해야 하며 국내외 가격 차이가 큰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가격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들에 대해서도 "유통과 물류 효율화,글로벌 소싱 확대를 통해 제품과 서비스 값을 내리고 가격 선택폭을 넓혀 소비자 선택 기회를 증대시켜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현예 기자 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