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7000억弗 구제금융] 美재무부 직접 매입…운용은 민간에

배드뱅크 방식 철회…최저가격 제시한 부실자산부터 사들여

미국 정부가 최악의 금융위기를 막기 위해 사실상 '백지수표'를 발행했다. 최근 패니메이 프레디맥 AIG에 대한 개별적이고 선별적인 구제가 시장에서 제대로 약발을 받지 못하자 7000억달러의 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종합 구제안을 내놓은 것이다. 폴슨 재무장관은 "구제안이 의회에서 신속히 처리되지 않으면 우리로선 더 이상 손쓸 길이 없어 하늘에 맡길 수밖에 없다(then,heaven helps us all)"고 절박한 사정을 표현했다. 구제안의 핵심은 미 재무부가 금융위기 뇌관인 부실 모기지(주택담보대출)와 이를 기초자산으로 한 주택저당증권(MBS)을 금융권으로부터 앞으로 2년간 직접 사들여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것이다.

7000억달러는 올해 한국의 총 예산(256조원)의 약 3배에 달하는 규모다. 올해 9월17일 이전에 금융권이 발행한 모기지 증권을 매입해 금융권에 유동성을 공급키로 했다. 재원은 국채 발행으로 조달되며 역경매 방식으로 모기지를 사들인다.

모기지 증권을 매각하는 금융사가 가격을 제시하면 최저 가격을 제시한 자산을 우선 매입하는 식이다. 금융권으로선 부실을 털어낼 수 있는 기회다. 이렇게 사들인 부실모기지의 처리는 민간 전문가가 맡는다. 당초 미 정부는 금융회사의 부실자산이나 채권만을 사들여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일종의 배드뱅크인 정리신탁공사(RTC)를 설립하는 방안을 구상했다. 하지만 해외 각국 정부에 "패니메이나 프레디맥이 발행한 채권을 팔지 말아달라"고 전화를 돌릴 정도로 상황이 다급했던 재무부는 직접 개입으로 선회했다. 구제안은 앞으로 2주 내에 미 상ㆍ하원의 승인을 받아 가동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재정에 상당한 부담을 지우는 것이 문제다. 이달 말로 마감되는 2008회계연도에 미 재정적자는 3894억달러로 추산된다. 작년의 2배다. 내년에는 적자가 더 커져 4820억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 용어풀이 ]

◆역경매(Reverse Auction)=보통 경매는 상품을 사려는 여러 수요자가 응찰해 가격을 점점 높여가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역경매는 그 반대로 상품을 팔려는 다수의 공급자가 참여,호가를 점점 낮춰가는 경쟁을 통해 가장 낮은 가격을 제시한 사람이 낙찰받게 된다. 미 정부가 역경매 방식을 채택한 것은 가장 싼 가격에 금융사 부실자산을 사들여 국민 세금을 아끼자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