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보험사 "AIG 사태가 기회다"

미국계 보험사 AIG의 유동성 위기를 계기로 국내 보험시장의 판도가 변화될 가능성이 감지되고 있다.

미국 AIG가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국내 AIG생명과 AIG손보도 구조조정에 휘말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데다 이 여파로 다른 외국계 보험사도 신계약 등 신규 영업에 타격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외환위기 이후 시장을 지속적으로 잠식당해 온 토종 보험사들이 잃어버린 시장을 회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AIG 구조조정 본격화되나

AIG의 미국 상업보험 부분 최고경영자(CEO)인 크리스티안 무어는 지난 23일(현지시간) 열린 컨퍼런스콜에서 "미국 내 사업 부문과 해외 생명보험 부문만 남길 계획이며 다른 자산은 정리해 정부가 지원한 자금을 2년 안에 최대한 빨리 상환하겠다"고 밝혔다.

AIG가 정부 구제금융을 갚기 위해선 전 세계 100개국에서 벌이고 있는 사업의 절반 이상을 정리해야 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미국 본사 주도의 구조조정 계획이 흘러나오면서 한국 지점인 AIG생명과 AIG손보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AIG 관계자는 "구체적인 구조조정 계획은 앞으로 2~3주가 지나야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며 "직원들이 구조조정 등에 대해 불안감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감독 당국은 AIG생명은 해외 생보 부분으로 유지되고 AIG손보의 경우 현재 지배구조상 미국 내 사업 부문으로 분류돼 있어 유지할 것으로 보고 일단 관망하고 있다.

AIG생명은 이번 주 초 해약환급금이 1500억원을 넘은 이후 해약 건수가 줄어들고 있지만 신규 영업에는 아직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주요 판매채널 중 하나인 홈쇼핑의 경우 신규 가입이 어려워지자 GS홈쇼핑 등 주요 홈쇼핑들이 다음 달부터 AIG보험의 방송 중단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AIG생명은 매달 초회보험료 수준으로 500억~700억원 수준을 기록해 왔다. 신규 가입이 안될 경우 설계사 등 기존 조직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진다. 고정비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구조조정이 더욱 거세질 수도 있다. AIG생명(6월 말)의 경우 본사 직원이 727명이며 설계사가 1065명,대리점은 5242곳에 달한다.

◆타 외국계 보험사도 비상

외국계 보험사들은 외환위기 이후 방카슈랑스 허용,변액보험 도입 등에 발맞춰 시장개척을 주도하면서 시장점유율(생보 기준)을 지난해 21.4%까지 높였다. 그러나 AIG 유동성 위기 여파로 외국계 보험사들의 영업에 급브레이크가 걸렸다. '이제는 외국계도 믿을 수 없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탓이다. 외국계 중 시장점유율 1위인 ING생명의 경우에도 이달 신계약이 지난달에 비해 줄어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따라 '2007 회계연도 대비 신계약 15% 신장' 등 올해 목표를 조정하고 있으며 비용 절감방안을 다각도로 모색하고 있다. 이와 함께 영업정책,프로모션 등 영업전반에 걸쳐 컨설팅을 받을 것으로 전해졌다.

메트라이프생명 관계자는 "AIG 사태는 외국계 보험사에 대한 신뢰도를 하락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어 현 상태를 계속 모니터링하고 있다"면서 "최근 영업점에 안내자료를 배포해 고객들에게 보험계약의 안전성을 알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외국계의 신규 영업이 어려워지면서 설계사들이 대형 독립보험대리점(GA) 등으로 이탈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일부에선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적자를 내온 일부 외국계 보험사가 한국에서 철수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