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뜨거운 감자' 재건축 규제

"수돗물에 시뻘건 녹물이 섞여 나오는 거 친척들이 보면 놀라죠.맨꼭대기 5층은 수압마저 약해 샤워조차 힘들어요. "

지은 지 26년된 서울 강남구 개포동 주공2단지 아파트(1440가구)에 사는 주부들은 밥을 지을 때나 세탁기를 돌릴 때마다 울화통이 치민다. 근처 미장원이나 야채가게에 가보면 "왜 재건축을 못하게 해서 이렇게 고생을 시키느냐"는 하소연을 들을 수 있다. 5공 때 국보위가 계획해 1981∼1984년 공급한 개포지구(주공ㆍ시영) 9080가구.강남 부촌1번지 도곡동 타워팰리스가 걸어서 10여분 거리에 있지만 여기는 '녹물 나오는 동네'로 불린다.

그렇다면 개포 주공단지는 재건축이 금지돼 있나? 아니다. 소형ㆍ임대주택 의무비율에 개발이익환수금이란 규제로 인해 재건축을 해봤자 남는 게 없다는 얘기다. 재건축을 하면 용적률을 기존보다 높일 경우 남는 아파트를 일반분양해 들어오는 돈으로 건축비를 충당한다. 개포주공 아파트 83㎡(25평)짜리가 15억원을 호가하는 것도 재건축 이후 가치를 따져서다.

하지만 개포단지에선 현행 용적률 177% 대로 재건축을 해봤자 일반분양분이 거의 없어 건축비(추가분담금)를 자신들이 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손해라고 주민들은 주장한다. 이처럼 재건축추진 아파트에 대한 규제 완화는 소유자와 정부가 개발이익을 얼마나 나누는가에 대한 '이익분배 게임'이다. 규제완화의 정도에 따라 해당 아파트의 가격이 심하게 요동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헌집을 헐고 새 집을 짓는 재건축 자체는 도심에 주택공급을 늘리는 효과를 본다.

내년 7월 입주하는 서울 반포동 주공2단지를 재건축한 래미안퍼스티지는 2444가구로 기존 단지의 42.1%인 724가구(임대 266가구 포함)가 늘었다. 5층짜리 아파트를 최고 32층짜리의 고층아파트로 지었다. 이 단지는 개발이익환수금이란 규제를 받지 않아 돈을 남기는 재건축이 가능했다. 서울에서 조합을 설립,착공하기 전 단계인 재건축추진 아파트는 모두 12만가구.재건축을 통해 30%(3만6000가구)를 추가로 공급할 수 있다는 게 국토부의 계산이다. 판교신도시(2만9000가구)보다 더 많은 물량이다.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은 며칠 전 국회 포럼에서 "재건축 규제를 과감하게 풀면 강남 주택시장에 불이 붙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엄청난 파장이 나타날 수 있다"고 걱정했다. 노무현 정권 때인 3년 전 녹음 테이프를 듣는 것 같다. 2005년 7월 이해찬 국무총리는 "지금 재건축 이야기를 꺼내면 다시 부동산 시장이 불안해질 수 있다"며 재건축을 통한 공급 확대 방안은 안정기조가 잡힌 뒤 재논의하자고 말했다.

재건축 규제를 풀면 당장은 집값이 들썩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개포 주공단지처럼 녹물이 나오는 아파트에서 앞으로 10년간 더 살라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뜨거운 감자를 마냥 회피하기보다 아파트 소유주와 무주택 서민,정부가 개발이익을 합리적으로 분배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김문권 건설부동산부 차장 m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