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는조직 지는조직] (1) 창의성의 비밀 ‥ '봉숭아학당' 18년 長壽비결


이곳에는 선후배가 없다 … 등의 웃음 DNA만 흐를뿐…

KBS2TV '개그 콘서트'의 인기 코너 '봉숭아 학당'은 올해로 만 18살이다. 전 방송사를 통틀어 코미디 프로그램 중 최장수 코너다. 1990년 '코미디 하이웨이'의 한 코너로 출발해 맹구,오서방 등의 캐릭터를 내놓으며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개그콘서트'에서는 2000년 부활해 20% 안팎의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다. TV 화면에서는 웃음이 넘치는 '봉숭아 학당'이지만 안을 들여다 보면 살 떨리는 경쟁이 있다. 연출을 맡고 있는 김석현 PD(37)가 "매일 구조조정이 있다"고 말할 정도다. 시시때때로 누구든지 들어올 수도,잘릴 수도 있다. 철저하게 실력 위주로 출연진을 가린다. 이것이 20년 가까이 살아남은 '봉숭아 학당'의 저력이다. 매일 구조조정ㆍ신인에게도 오디션 기회

개그맨 4년차인 윤형빈씨(29)는 지난 4월 '왕비호'를 선보이기 전에는 존재감이 없었다. 실적(?)이 전무했던 그가 봉숭아 학당에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은 순수하게 자기만의 아이디어로 개발한 캐릭터 '왕비호' 덕분이다. '봉숭아 학당'은 매주 개그맨들에게 오디션 기회를 준다. 아무리 신인이라도 이 오디션에서 합격점을 받으면 출연할 수 있다. 뒤집어서 보면 그만큼 현재 출연진의 자리는 불안정하다.

▶▶▶1981년부터 2001년까지 GE 회장을 지낸 잭 웰치(73)의 별명은 '중성자탄 잭'이었다. 웰치가 취임 6개월째부터 철저한 성과중심주의로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가자 직원들이 건물에는 피해를 주지 않은 채 직원들만 살상시킨다며 붙인 이름이다. 웰치는 350개였던 사업부를 12개로,42만명이던 직원은 27만명으로 줄였다. 이 모든 것이 GE가 잘나가고 있던 시점에 일어났기 때문에 더 충격적이었다.
실패를 계산한 끊임없는 시도

박지선씨(23)는 조선왕조부록에서 못생긴 후궁으로 인기를 끌다가 '봉숭아 학당'에 들어왔다. 혼자서 무대를 이끌어야 하기 때문에 반응이 안 좋을 때는 무너지기도 쉽다는 것 또한 감수해야 했다. 박씨는 "캐릭터의 틀을 완전히 잡을 때까지는 개그맨과 PD 모두 '실패를 계산한 시도'를 계속해서 펼쳐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맡은 '페미니스트'는 처음 얼마간은 자리를 잡지 못해 자신을 소개하는 정도에서 그쳤다. 하지만 모든 생각이 '야한' 것에만 수렴되는 '박교수(박성광)'와 대립각을 세우며 재미를 더하자 점차 분량이 늘어 지금은 5분 이상을 혼자서 코너를 진행한다.

▶▶▶독일에 기반을 둔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 BMW는 1980년대부터 '가치지향적인 인사관리 정책'이라는 이름 아래 행동강령을 만들었다. 그 중 하나가 '모든 직원에게 실수하는 것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창의적인 발상을 위해서라면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실수는 피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1990년부터는 아예 한 달에 한 번 직원들에게 '창의적인 실수 상'을 준다. 이런 실수를 비난하고 조롱하는 이가 있다면 그를 두고 '최고의 바보 같은 행동'의 사례로 발표한다.
팀워크로 탄생한 유행어 "하고 있는데~"

허경환씨(28)는 변명만 하는 경상도 사나이 캐릭터로 "하고 있는데~"라는 유행어를 탄생시켰다. 허씨는 이를 "팀워크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원래 자신의 말투였던 것을 주변 개그맨들의 추천으로 코너에서 활용했기 때문이다. 감독과 작가들은 말투만으로는 쉽게 식상해질 수 있다는 우려하에 가상의 인물 '미숙이'를 탄생시켰다. 여자에게 작업을 걸어보지만 잘 안 되는 과정을 스토리로 만든 것이다. 허씨 외에도 봉숭아 학당 멤버들은 팀원들의 피드백이 절대적인 도움을 준다고 믿는다.

▶▶▶영국 최대 정유사인 BP는 모든 경영자가 온라인상에서 기술과 정보를 교류하도록 장려한다. 이들은 업무 시간의 15%를 계열사 간,혹은 사업부문 간 지식 공유 활동에 할당해야 한다. 이런 공유의 장은 아이디어를 사고파는 오픈마켓과 같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전문기술을 찾아내는 감각을 기른다.
최대한 자율성 보장…PD는 출연여부만 결정

박성광씨(27)가 '봉숭아 학당'에서 맡고 있는 '박교수'는 80%가 그의 작품이다. '봉숭아 학당'을 시작하기 전 PD가 '무조건 야한 생각만 하는 인물'을 만들라는 지시를 내렸을 뿐이다. 그는 여기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고안해 왔다. "소년이여 '야동'을 가져라""'무료'는 짧고 '유료'는 길다"는 유행어도 탄생시켰다. PD와 작가는 개그맨들이 완성해온 캐릭터를 보고 5분 사이에 방송 출연 여부를 결정할 뿐이다.

▶▶▶사무용품 회사 3M에는 '부트레깅(Bootlegging)'이라는 것이 있다. 원래는 미국의 금주법 시대에 몰래 밀주를 판매하는 것을 의미한다. 3M에서는 상사가 연구를 중지하도록 명령한 과제를 각 개인이 근무시간 종료 후에 회사 설비를 이용하여 계속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를 말한다. 부하 직원의 아이디어가 죽지 않도록 최대한 자율성을 보장하는 제도다. 3M에는 '15% 룰'도 있다. 근무시간의 15%를 각 구성원이 개인적으로 흥미있는 연구에 사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