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시장 패닉] 기업들 환율공포 ‥ 정유업계 "한달새 1년 수익 절반 날아가"

"설마설마했는데 환율이 이렇게까지 치솟을 줄 몰랐다. 비상경영을 선포할 틈도 없이 한계선상으로 내몰리고 말았다. " "1년 동안 벌어들인 순익의 절반이 최근 한 달간의 환차손으로 날아갔다. "

원ㆍ달러 환율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기업들의 신음이 '비명'으로 바뀌고 있다. 9월 초 이후 한 달여 만에 환율이 무려 228원이나 오름에 따라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정유 항공 철강 등 업계는 말 그대로 초비상 상태다. ◆한계상황 넘어선 환차손


SK에너지 GS칼텍스 등 정유업체들은 최근 환율 급등으로 벌어들인 돈을 고스란히 날릴 판이다. 국내 정유4사는 원유대금을 결제하기 위해 70억~80억달러의 단기 외화부채를 끌어다 쓰고 있다. 최근 한 달 사이 환율 상승액 228원을 적용하면 장부상 환차손만 1조5960억~1조8240억원에 달한다. 정유4사의 1년 순이익(지난해 기준)의 절반 이상을 환차손으로 날려 버린 셈이다.

정유업체 관계자는 "부채 상환일이 도래하면서 장부상 환차손이 3분기 실적에 이미 반영되기 시작했다"며 "부채 상환일이 3분기에 집중된 정유사의 경우 사상 첫 적자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석유제품 수출 역시 줄어들고 있으며,최근 유가 하락으로 수출단가가 하락해 수익 규모도 크게 감소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체 매출 중 수출 비중이 40~60%를 차지하는 4대 정유사들의 수익도 크게 감소할 전망이다.

항공사들도 환율 급등으로 신음하기는 마찬가지다. 대한항공 아시아나 등 항공사들은 최근 한 달 새 누적 환차손이 6000억여원을 훌쩍 넘어섰다. 연간 달러초과 수요가 20억달러에 달하는 대한항공은 연평균 환율이 10원 오르게 되면 200억원의 손실을 입는 구조다. 항공사 관계자는 "단기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대책이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환율 때문에 여행 수요마저 급감하는 추세다.

철강업계는 원자재 수입 가격의 탄력성이 철강 제품 가격 탄력성보다 낮아 최근 환율 급등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포스코의 경우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원료 구입에 쓰는 전략으로 환율 변동에 대응하고 있지만 이마저 장기간 써먹을 수 있는 특효약이 될지는 미지수라는 게 업계의 반응이다. ◆환율 수혜 "글쎄요"

대표적 수출품목인 자동차 제조업체들도 최근 환율 급등이 달갑지만은 않다. 환율이 뛰면 매출이 늘어나는 혜택을 보고 있지만,환율 급변동이 수입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달러로 거둬들이는 해외 판매 수익을 고려하더라도 수입자재 가격이 폭등하면 생산비용이 늘고,이는 차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오히려 매출이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경기 변동에 민감한 전자업계도 실적 부진을 우려하고 있다. 환율 급상승으로 수출 환경은 좋아질 수 있지만 금융ㆍ외환시장 불안이 길어지면 소비 심리가 위축돼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글로벌 업체들은 최근 환율변동폭이 워낙 커 환헤징에는 손을 놓고 있다. 다만 결제통화를 다변화하거나 동일 국가에 수출통화와 수입통화를 일치시키는 방법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게 업계 지적이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