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 윤문효 선임 연구원 "쏘울 트레이드 마크 '블랙 A필러' 하마터면 사라질뻔 했죠"


"예산 아끼지 마라 정의선 사장 강조했지만 원가절감 벽에 부딪혀…그래도 밀고 나갔죠"

"하마터면 쏘울의 트레이드 마크인 블랙 A필러(앞유리 좌우의 기둥)가 사라질 뻔 했어요. 설계팀에선 원가가 너무 비싸다며 검정색 테이프로 처리하라고 성화였죠.설득하느라 진땀을 뺐습니다. "지난 7일 경기도 화성의 현대·기아자동차 남양연구소에서 기아차 쏘울을 디자인한 윤문효 기아차 디자인2팀 선임연구원(사진)을 만났다. 그는 쏘울 양산차 디자인을 진두지휘한 주인공이다.

현대·기아차 R&D(연구·개발)의 핵심 본부인 이곳은 휴대폰 카메라 렌즈에 촬영금지 테이프를 붙인 후에야 출입을 허락할 정도로 '보안'이 철저했다. 기자는 이름과 소속,주민등록번호를 방문센터에 신고하고 한참을 기다린 뒤에야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연구소 내 도로 곳곳에선 디자인 노출을 피하기 위해 큼지막한 천으로 차체를 휘감은 컨셉트카들이 주행성능을 시험하느라 분주했다.

윤 연구원은 "정의선 사장은 디자인 예산을 아끼지말라고 줄곧 강조했지만 천정부지로 치솟은 원자재 값과 환율 때문에 디자인 경영도 '원가절감'이라는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며 "그린하우스(차량의 전면·측면 유리부분)가 전투기 조종석 느낌이 나도록 하기 위해선 기본 원가의 2배에 달하더라도 블랙 A필러를 고집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철판 위에 고광택 플라스틱을 덧댄 블랙 A필러는 전 세계 CUV(크로스오버차량) 가운데 미니 쿠퍼와 쏘울에만 적용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비슷한 디자인의 도요타 '사이언 xB'와 닛산 '큐브'는 검정색 테이핑 또는 페인트 처리를 했다.

2006년 쏘울의 모태가 된 컨셉트카 'AM(프로젝트명)'이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직후 그에게는 'AM의 양산형 모델을 1년 반 안에 디자인하라'는 특명이 떨어졌다. 그는 쏘울의 클레이(찰흙)모형 제작을 위해 남양연구소 내 디자인동에서 밤샘 작업을 거듭하며 디자인 개발에 몰두했다. 보통 3개월 넘게 걸리는 1 대 1 모형을 만드느라 그의 손톱에는 언제나 찰흙 찌꺼기가 끼어있을 정도였다.

윤 연구원은 자리를 옮겨 쏘울 디자인 품평회 때 전시했던 클레이 모형을 보여줬다. 그는 "헤드램프 하나만도 300만원이 넘는다"며 "모형 차의 가격은 쏘울보다 5배 이상 비싼 1억원에 육박한다"고 덧붙였다. 앞이 높고 뒤가 낮은 '전고후저'형 디자인은 그의 머릿 속에서 나왔다. 윤 연구원은 "고유가 시대에 접어들면서 차체는 작으면서 실내공간은 넓은 소형차를 만드는 게 자동차 디자이너들의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며 "긴 A필러를 사용해 시야 확보를 용이하게 만들었고 소형차지만 강인한 SUV 느낌을 최대한 살릴 수 있도록 차체를 높였다"고 말했다. 뒷면이 납작한 박스형 디자인은 젊은이들이 즐겨 메는 '백팩'에서 영감을 얻었다.

윤 연구원이 모는 차는 쏘울의 경쟁 차종으로 일컬어지는 미니 쿠퍼다. 그는 '적을 알아야 이길 수 있다'는 믿음으로 2005년 개인 돈을 털어 이 차를 구입했다. 그는 "미니 쿠퍼는 좋은 차지만 가격대비 품질이 떨어지고 핸들링이 지나치게 뻑뻑하고 엑셀러레이터 반응이 느리다"며 "쏘울은 핸들링이 가볍고 살짝 밟아도 힘차게 튀어나가는 특성이 있어 성격이 급한 한국인에게 더 잘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피터 슈라이어 디자인부문 부사장을 영입한 후 기아차가 '패밀리룩'을 찾아가고 있지만 아직 더 가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지난주 파리모터쇼에서 시트로엥의 하이브리드카인 '히프노스'를 보고 전율을 느꼈다고."철판으로 만든 것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라인을 과감하게 꺾고 면을 연결한 디자인을 보고 '우리도 저런 차를 만들어야 할 텐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앞으로 소비자들은 작은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개성있는 디자인의 차를 구입할 것"이라며 "무난함에서 벗어나 보다 과감한 디자인에 도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김미희 기자 iciici@hankyung.com

사진=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