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땐 그랬지"...럭키 서울 브라보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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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진 지음 추수밭 328쪽 1만3000원
책을 펴자마자 흑백 다큐멘터리 영화의 한 장면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엄마,십원만!"하고 졸라서 얻은 '다보탑'을 들고 집을 나서면 골목 어귀에서 맨 처음 만나는 '달고나',쇠틀을 빙글빙글 돌리며 굽던 풀빵,눈깔사탕을 입에 물고 삼매경에 빠졌던 만화방,견디기 힘든 유혹이었던 아이스케키,멀쩡한 물건까지 들고 나가게 했던 엿장수 리어카….'위험했지만 달콤했던' 어린 시절의 군것질거리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이 책은 개화기 이후 20세기 한국인의 일상을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훑어보듯 되짚는 과거사 기행문이다. 이를 위한 보조기구는 추억의 군것질거리와 골목길놀이,운동회,학교생활,기생,패션,미팅,장발.미니.통금 단속,통기타 가수와 다방,대폿집과 니나놋집,박가분과 동동구리무 등 25가지 풍속 키워드들.저자는 옛 신문과 잡지의 기사와 흑백사진,책과 구술 등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우리의 가난했던 과거를 고통과 아픔의 기억 대신 애틋하면서도 밝은 시선으로 되돌아본다.
책에 나오는 해질녘 풍경 하나. "철수야,고만 놀고 밥 무러(먹으로) 들어온나!" "우리 철수 못 봤능교?" "못 봤심더.우리 아(애)도 찾고 있어예." 땅거미가 지면서 어둠이 점점 짙어지면 아이들을 찾는 소리가 골목 여기저기서 메아리친다. 지금이야 아이들 놀이터가 학원 아니면 컴퓨터 앞이지만 그땐 골목과 산과 들이 다 놀이동산이고 체력단련장이었다. 별 다른 놀이도구도 없었지만 뭐가 그리 신나고 즐거웠던지….소풍이나 운동회 때 맛보는 사이다와 김밥은 또 얼마나 맛있었던지.
변화를 이끈 트렌드세터들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1920년대 오렌지족이었던 모던껄.모던뽀이로부터 개화기의 연예인이었던 기생,단발.파마.구두의 등장과 패션의 변화를 이끈 '얼리 어답터'들의 실제 이야기가 생생하다.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라면과 조미료 등장,여자의 얼굴을 바꿔놓은 박가분과 동동구리무,냉장고.전화.전기밥솥.영화.텔레비전 등 문명의 산물들은 또 우리 삶을 얼마나 바꿔놓았는가.
장발과 미니스커트마저 단속했던 군사독재 시절,'쎄시봉'과 같은 다방에서 통기타 가수의 노래를 듣는 낭만이나 대폿집과 니나놋집의 젓가락 장단으로 시름을 달랬지만 그나마 통금 때문에 집으로 종종걸음을 했던 그 시절을 지금 웃으며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모두가 공감.공유하는 과거이기 때문이다. 과거를 돌아보는 저자의 시선이 따스할 뿐만 아니라 풍속사를 넘어 산업사,사회사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자료와 이야기 구성이 풍부하고 촘촘하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책을 펴자마자 흑백 다큐멘터리 영화의 한 장면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엄마,십원만!"하고 졸라서 얻은 '다보탑'을 들고 집을 나서면 골목 어귀에서 맨 처음 만나는 '달고나',쇠틀을 빙글빙글 돌리며 굽던 풀빵,눈깔사탕을 입에 물고 삼매경에 빠졌던 만화방,견디기 힘든 유혹이었던 아이스케키,멀쩡한 물건까지 들고 나가게 했던 엿장수 리어카….'위험했지만 달콤했던' 어린 시절의 군것질거리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이 책은 개화기 이후 20세기 한국인의 일상을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훑어보듯 되짚는 과거사 기행문이다. 이를 위한 보조기구는 추억의 군것질거리와 골목길놀이,운동회,학교생활,기생,패션,미팅,장발.미니.통금 단속,통기타 가수와 다방,대폿집과 니나놋집,박가분과 동동구리무 등 25가지 풍속 키워드들.저자는 옛 신문과 잡지의 기사와 흑백사진,책과 구술 등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우리의 가난했던 과거를 고통과 아픔의 기억 대신 애틋하면서도 밝은 시선으로 되돌아본다.
책에 나오는 해질녘 풍경 하나. "철수야,고만 놀고 밥 무러(먹으로) 들어온나!" "우리 철수 못 봤능교?" "못 봤심더.우리 아(애)도 찾고 있어예." 땅거미가 지면서 어둠이 점점 짙어지면 아이들을 찾는 소리가 골목 여기저기서 메아리친다. 지금이야 아이들 놀이터가 학원 아니면 컴퓨터 앞이지만 그땐 골목과 산과 들이 다 놀이동산이고 체력단련장이었다. 별 다른 놀이도구도 없었지만 뭐가 그리 신나고 즐거웠던지….소풍이나 운동회 때 맛보는 사이다와 김밥은 또 얼마나 맛있었던지.
변화를 이끈 트렌드세터들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1920년대 오렌지족이었던 모던껄.모던뽀이로부터 개화기의 연예인이었던 기생,단발.파마.구두의 등장과 패션의 변화를 이끈 '얼리 어답터'들의 실제 이야기가 생생하다.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라면과 조미료 등장,여자의 얼굴을 바꿔놓은 박가분과 동동구리무,냉장고.전화.전기밥솥.영화.텔레비전 등 문명의 산물들은 또 우리 삶을 얼마나 바꿔놓았는가.
장발과 미니스커트마저 단속했던 군사독재 시절,'쎄시봉'과 같은 다방에서 통기타 가수의 노래를 듣는 낭만이나 대폿집과 니나놋집의 젓가락 장단으로 시름을 달랬지만 그나마 통금 때문에 집으로 종종걸음을 했던 그 시절을 지금 웃으며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모두가 공감.공유하는 과거이기 때문이다. 과거를 돌아보는 저자의 시선이 따스할 뿐만 아니라 풍속사를 넘어 산업사,사회사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자료와 이야기 구성이 풍부하고 촘촘하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