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1997년 서울과 2008년 워싱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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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지구적 공조'를 위해 지난 주말 긴급 소집된 G7 및 G20 재무장관회의는 아무 성과도 내지 못한 채 미국을 성토하는 자리로 변질되고 말았다. 대책을 세우자고 만든 자리가 오히려 미국 금융시스템의 빈약한 문제해결 능력과 그들의 공포를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됐다.
호스트격인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한 잠도 못 잔 사람처럼 부시시한 얼굴로 회의장을 어슬렁거리기만 했다. "꼭 얼이 빠진 사람 같더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말이 없었다. 미국계 은행장들은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강정원 국민은행장은 "몇몇 뱅커를 만났는데 '패닉'이라는 단어 외에는 그 사람들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이 달리 없더라"고 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영원한 상전'이던 무디스 S&P 등 신용평가회사 고위층들에게 "당신들이 그렇게 좋다고 평가했던 베어스턴스나 리먼브러더스가 지금 어떻게 됐느냐"고 호통을 쳤지만 그들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미국은 우리를 가르친 스승이었다. 공적자금은 신속하고 충분하게 투입해야 하고,위기의 근본원인인 비효율과 부실을 제거하기 위해 4대 부문에 대한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하라고 했다.
그랬던 미국이 지금 다른 행동을 하고 있다. 한국이 했던 것보다 덜 충분하고,덜 신속하며,덜 근본적이다. 베어스턴스를 JP모건에 넘기는 등 땜질식 처방만 하다가 결국은 공적자금을 투입하겠다고 했고,이제는 은행 간 거래에 정부가 지급보증을 하겠다고 한다. 신속성과 충분성의 원칙은 어디에도 적용되지 않았다. 위기의 근본원인에 대한 성찰과 그에 따른 '고강도 구조개혁'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달러 무제한 방출 결정,사실상의 은행 국유화 조치 등 무지막지한 조치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일단 시장은 혼란의 늪을 빠져나오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런 조치들이 최악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극약처방'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평소 가르쳤던 것과 전혀 다르게 행동하는 스승을 누가 믿을 수 있을까. 미국발 금융위기가 쉽사리 해소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은 그래서 여전히 강하다.
워싱턴=김인식 경제부 기자 sskiss@hankyung.com
호스트격인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한 잠도 못 잔 사람처럼 부시시한 얼굴로 회의장을 어슬렁거리기만 했다. "꼭 얼이 빠진 사람 같더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말이 없었다. 미국계 은행장들은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강정원 국민은행장은 "몇몇 뱅커를 만났는데 '패닉'이라는 단어 외에는 그 사람들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이 달리 없더라"고 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영원한 상전'이던 무디스 S&P 등 신용평가회사 고위층들에게 "당신들이 그렇게 좋다고 평가했던 베어스턴스나 리먼브러더스가 지금 어떻게 됐느냐"고 호통을 쳤지만 그들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미국은 우리를 가르친 스승이었다. 공적자금은 신속하고 충분하게 투입해야 하고,위기의 근본원인인 비효율과 부실을 제거하기 위해 4대 부문에 대한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하라고 했다.
그랬던 미국이 지금 다른 행동을 하고 있다. 한국이 했던 것보다 덜 충분하고,덜 신속하며,덜 근본적이다. 베어스턴스를 JP모건에 넘기는 등 땜질식 처방만 하다가 결국은 공적자금을 투입하겠다고 했고,이제는 은행 간 거래에 정부가 지급보증을 하겠다고 한다. 신속성과 충분성의 원칙은 어디에도 적용되지 않았다. 위기의 근본원인에 대한 성찰과 그에 따른 '고강도 구조개혁'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달러 무제한 방출 결정,사실상의 은행 국유화 조치 등 무지막지한 조치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일단 시장은 혼란의 늪을 빠져나오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런 조치들이 최악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극약처방'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평소 가르쳤던 것과 전혀 다르게 행동하는 스승을 누가 믿을 수 있을까. 미국발 금융위기가 쉽사리 해소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은 그래서 여전히 강하다.
워싱턴=김인식 경제부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