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건강염려증

1989년 미국의 학계 일각에서는 사과에 들어 있는 화학물질 '알라'가 소아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깜짝 놀란 부모들은 사과로 만든 음식을 모조리 버리는 등 큰 소동을 벌였다. 더 당황한 건 사과 재배업자들이었다. 하지만 이 주장은 잘못된 것으로 밝혀졌는데 보통 소비량의 10만배 이상을 한꺼번에 섭취해야만 암이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과도한 건강염려증이 부른 어처구니없는 사례다.

건강은 무관심도 문제지만 과민해도 탈이다. 기침만 해도 혹시 폐에 이상이 있지 않나 의심하고,위가 쓰리면 위암을,피부가 조금만 빨개져도 피부암을 걱정한다. 건강에 집착한 나머지 무슨 중병에 걸렸을 것이라는 공포에 휩싸이기까지 한다. 길을 걸으면서 하늘이 무너질까 땅이 꺼질까 걱정하는 기우(杞憂)와 하등 다를 게 없다. 일종의 정신불안 장애인 이 건강염려증은 질병분류 코드에도 등록된 공식 병명이다. 이 환자들은 유명한 전문의가 소견을 내도 좀체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이 의사 저 의사를 찾아 다니는 닥터쇼핑(doctor shopping)을 하는가 하면,되레 '나는 정상이 아니다'는 점을 온갖 의학상식을 들이대며 강변하기 일쑤다. 인터넷의 발달로 건강과 질병에 관한 무분별한 정보가 쏟아지는 탓이다.

이런 건강염려증 환자들이 크게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며칠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건강염려증으로 진료를 받은 사람이 올 6월까지 9400여명으로 연간으로 치면 3년 전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난 것이라고 한다. 연령별로는 40대와 50대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나,모든 연령대로 확산되는 추세다.

의사들은 건강염려증 환자의 대부분이 우울증,사소한 일에도 놀라는 공황장애,한 가지 일에만 집착하는 강박장애 환자들이라고 말한다. 정신질환자의 증가에 비례해서 건강염려증 환자가 늘어난다는 얘기다. 올바른 건강정보를 선별해야겠지만,무엇보다 가족과 이웃들의 따뜻한 배려가 어느 때보다 아쉬운 요즘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