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그래도 새 날은 온다

얼마 전 홍콩의 한 은행은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예금이 대거 인출되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고 한다. 비가 온 것이 원인이었다. 갑자기 내린 비를 피하려고 행인들이 이 은행의 한 지점 차양밑으로 몰렸는데 차를 타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은행에 무슨 변고가 생겨 예금자들이 줄을 선 것으로 오해해 인근 지점들로 달려가 예금을 돌려달라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다는 것이다.

국내 은행의 한 인사는 외국인 고객이 요즘 홍콩에서 화제라며 이런 내용의 '레인 런(rain run) 해프닝'을 전해줬다면서 "세계적으로 금융시장이 하도 뒤숭숭해서인지 평상시처럼 그냥 우스갯소리로 흘려듣지 못하겠더라"고 씁쓰레했다. 일반투자자들에게도 요즘같이 답답한 때가 없다. 주식과 펀드는 지난해 10월 고점에 비해 1년 만에 반토막이 됐고 안정적이라고 믿었던 금융상품도 정말 원금이 보장되는 것인지조차 불안하기만 하다. 주식과 펀드를 정리하려 해도 주가가 너무 떨어져버려 팔 엄두조차 나지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지금은 이성이 통하지 않는 시기라고 걱정하고 있다. 어려움을 겪는 것은 우리만이 아니지만,'과거의 외환위기가 다시 온 것 같다'는 낙담과 비관만 부각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얼마 전 뉴욕타임스는 "투자자들에게 '지금은 전과 다르다'는 생각이 가장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몇 달은 아닐지 모르지만 수년 후엔 지금이 가장 투자의 적기라는 인식을 갖게 될 것이며 2~3년 후엔 참 똑똑했다고 말하는 날이 올 것"이라는 월가 애널리스트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사실 지난번 외환위기로 1998년 6월에 300 밑으로까지 떨어졌던 코스피지수가 1년 뒤인 1999년 7월에 1000포인트를 넘어설 것으로 믿었던 사람이 당시 몇 명이나 됐을까 생각해본다.

금융위기가 실물경제 불황으로 번지면서 향후 2~3년간 세계경제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속출하고 있다. 그렇지만 경기는 사이클을 이뤄 순환하는 법이다. 침체와 불황이 얼마나 갈지는 미지수이지만 그 과정들을 겪으면 경기는 다시 회복된다고 교과서에 나와 있고 실제도 그렇다.

우리 경제는 또 기업이 튼튼하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해외에서도 삼성전자 LG전자 포스코 현대차 현대중공업 등과 같은 세계적인 기업들을 한꺼번에 갖기는 어렵다며 부러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일전에 한 여행업체 관계자는 외국인 관광객을 맞는 한국과 일본 상인들의 자세가 다르다고 지적했다. 일본 상인들은 인근 경쟁점포를 들러 찾아온 외국인에게 그 점포도 좋은 상품을 싸게 판다고 칭찬하지만 한국은 험담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일본에는 쇼핑하기 위해 더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지만 한국은 반대라고 꼬집었다.

최근 증시에는 멀쩡한 기업마저 유동성 위기에 몰렸다더라는 식의 밑도 끝도 없는 루머와 괴담들이 부쩍 많아졌다. 불안은 새로운 불안을 낳아 악순환 될 뿐이다.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우선 각 경제주체들이 마음과 자세를 다잡아야 한다. 외국인 관광객을 맞는 일본 상인들의 태도에서 보듯 서로를 믿고 상생하는 자세를 가지면 위기를 더 빨리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문희수 증권부장 m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