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法의 눈으로 본 금융위기

이호선 <국민대 교수·법학>

경제범죄 대처 소홀이 월가사태 한 원인사법 예방기능 강화해 더 큰 禍 막아야

2000~2007년 사이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기소율은 48%,보험사기의 기소율은 무려 75%,또 증권관련 사기 범죄는 17%나 떨어졌다. 괜찮은 기록이다. 아니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이는 사회가 제대로 굴러가고 있다는 증거이자 희망이다.

짐작하시다시피 우리 얘기는 아니다. 이건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눈을 통해서 본 미국 얘기다. 그러나 부러워할 일은 전혀 아니다. 왜냐하면 실상은 완전히 딴판이기 때문이다. 기소율 하락은 곧 범죄율의 하락일 것이라는 예상은 너무나 순진한 발상이다. 금융부실대출 사기와 같은 경제범죄를 포함한 화이트칼라 범죄 기소율이 무려 50%가량 떨어지는 동안 미국의 금융회사 내부에서는 도덕적 해이를 넘어서 범죄수준에 이르는 행위들이 경영의 이름으로 일어났고 그 결과는 사상 유례없는 금융위기의 촉발이었다. 지금 이 금융위기를 놓고 한쪽에서는 왜 진작에 연방수사국과 같은 기관이 좀더 적극적으로 경제범죄에 대처해 예방적 기능을 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반성과 질책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2004년 연방수사국이 대출사기가 엄청나게 범람할 잠재적 위험성을 갖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경고한 이후인 2005년의 경우에도 금융대출사기범죄만을 다루는 요원들은 전체 1만3000명의 수사요원들 중 단 15명에 불과했다. 대출사기와 같은 금융범죄 수사요원이 이렇게 적은 것은 9·11 사건 이후 미 법무부의 관심이 대외안보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지금은 177명으로 늘어났다지만 이 역시 1980년대에 비하면 수백명이나 적은 것이다.

현재 연방수사국은 패니메이와 프레디맥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데 이어 AIG와 리먼브러더스도 수사 대상에 올려 놓고 그 밖에 약 1500건 정도의 부실대출 사건을 조사 중이다. 이를 위해 연방수사국은 경제범죄 수사요원들을 두 배 이상 늘릴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한다. 파산신청 일주일 전에도 퇴임하는 이사 두 명에게 2000만달러를 지급하고 자신은 회사 재정에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리먼브러더스의 리처드 S 풀드 전 최고경영자의 항변에서도 당국의 수사가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법의 형사법적 기능 중 하나는 일반예방에 있다. 일반예방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법의 적용과 집행에 엄정함과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그 전 단계로 철저한 수사가 전제돼야 함은 물론이다. 우리의 경우도 고질적인 전관예우 등에 관한 법조계 안팎의 불만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 시민단체가 2004년에서 2007년까지 퇴임한 법원장 출신 변호사들의 사건 수임 현황을 판결문만으로 확인한 것이 210건,그 중 형사사건이 155건(73.8%)에 달한다는 것이다.

또 법무부가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2007년 하반기 형사사건 수임 건수에서 1∼20위를 차지한 변호사 중 17명이 자신의 최종 근무지에서 개업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렇게 전관예우를 통해 무죄를 받거나 영장이 기각됨으로써 빚어지는 현상은 어떤 것일까. 경찰이나 검찰의 수사와 기소에서의 소극성,내성을 갖춘 모럴 해저드의 축적과 이를 통한 불감증 및 지능적이며 대담한 화이트칼라 범죄의 증가,그리고 마지막엔 애꿎은 일반 시민들까지도 독박을 쓸 수밖에 없는 경제위기가 아닐까.

기업가 정신에 담겨야 할 것은 합리적 이윤추구이지 범죄적 수익이 아니다. 그게 사법적 정의다. 예방적 기능이 제대로 작동할 때 시장도 살고 페어플레이 정신으로 무장된 혁신적 기업가들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