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연구의 대가' 존 켈치 하버드대 교수의 위기극복 전략

"M&A로 사성같은 글로벌기업 부상기회… 광고비 축소등 급격한 마케팅 변화 피해야"

'불황 연구'로 유명한 미 하버드대의 존 켈치 교수(경영학)는 "불황은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기업들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주겠지만 외환위기를 계기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한 삼성처럼 시장상황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기업들은 오히려 도약의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객과의 대화를 늘려 불황을 함께 극복하자는 메시지를 던지는 게 중요하다"며 "불황기에는 주가가 싸기 때문에 공격적인 M&A(인수합병)나 마케팅으로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것도 좋다"며 공격적 경영을 제언했다. 켈치 교수는 올 들어 '불황을 이기는 마케팅 기법''그레이터 굿(Greater Good)'등을 잇따라 펴내며 불황을 이길 수 있는 마케팅 전략을 소개해 주목을 받고 있다. 본사는 26일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불황에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 경영전략에 대한 조언을 들어봤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비즈니스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경기가 나빠지면 먼저 소비가 줄고,이는 각 주정부의 세입 감소로 이어진다. 적자 재정에 시달리는 주정부들은 세율 인상이나 사회기반 시설의 민영화를 시도하게 된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면 소비자들의 주머니는 눈에 띄게 가벼워진다. 소비가 더 위축되면서 미국인들의 소비성향이 급격히 변할 것이다. 악순환 고리를 끊기 어려운 만큼 회복엔 적잖은 시간이 걸리게 된다. 앞으로 당분간은 미국보다 상대적으로 소비가 살아 있는 이머징마켓(신흥시장)이 비즈니스 하기엔 더 나을 것이다. "

―소비성향에 어떤 변화가 예상되나. "1990년대는 소비열풍과 주택시장 호황의 시대였고,이 두 가지가 미국경제의 원동력이었다. 활발한 소비로 고성장이 이어졌고,미국인들은 부유해졌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넓고 호화로운 주택을 구입했다. 호화주택은 소비성향을 결정지었다. 미국인들은 대형 TV,냉장고,소파 등 값 비싼 물건들로 넓은 집을 채웠고 낡은 제품을 최신 모델로 바꿨다. 큰 냉장고 때문에 동네 할인마트와 슈퍼마켓도 장사가 잘 됐다. 모든 경제주체들이 과잉 소비에 중독됐다. 주택거품 붕괴는 이러한 미국인들의 과잉소비 성향을 일순간에 잠재울 것이다. 소득감소도 소비변화의 한 요인이겠지만 큰 주택에서 작은 주택으로 거주 공간이 바뀌는 데 따른 영향이 가장 클 것이다."

―과잉소비를 멈춘다고 해도 필수품은 소비해야 하지 않나.

"소형이나 무형 상품들이 유리할 것이다. 소비를 하더라도 주택 공간을 크게 차지하는 상품이나 구매 후 유지비용이 드는 상품은 꺼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봤을 때 외식 해외여행 스포츠 등은 다른 사업보다 불황을 잘 견딜 것이다. 불필요한 물건을 처분하려는 사람들로 인터넷 경매사이트 매출이 오를 것이고,저가 항공 제트블루나 대형할인점 월마트도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들을 사로잡을 것이다. "―불황 때 필요한 경영전략은.

"시장조사를 철저히 해야 한다. 소비성향 변화를 면밀히 추적하고 불황기에 알맞은 상품을 내놔야 한다. 소비자들은 가격과 품질에 민감해지게 된다. 새로운 브랜드 출시는 미뤄야 한다. 기존에 친숙했던 브랜드에서 더 합리적인 상품을 선보일 때 소비자는 반응한다. 가격할인 행사나 소형 사이즈 제품 출시도 효과적이다. "

―불황 때 피해야 할 전략은."마케팅 전략에 급격한 변화를 준다거나 광고비용을 축소하는 등 흔히 경영악화 상황에서 유혹이 큰 전략을 피해야 한다. 그보다는 지금 있는 종업원과 고객들에게 귀기울여 함께 불황을 견디는 전략이 중요하다. 모든 고객층에게 어필하려다 든든한 지원군인 기존 고객을 잃을 수도 있다. 시장이 어려울수록 광고비용을 늘리라고 권하고 싶다. 고전하는 경쟁 기업이 광고에 힘쓰지 못할 때가 기회다. "

―한국기업들을 어떻게 평가하나.

"한국경제를 이끄는 기업들은 대부분 수출에 의존하고 있다. 3년 정도 지속될 세계불황은 이들에 적잖은 어려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삼성과 같은 기업들은 10년 전 한국을 강타한 외환위기 속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전에 없던 경쟁력을 갖춘 결과 글로벌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이와 같은 일은 지금도 가능하다. "

―강력한 리더십의 의미는."미국이 가장 두드러지지만 소비침체는 전 세계로 퍼지는 양상이다.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따라서 진취적인 경영이 능사는 아니다. 그보다는 소비자들의 가치가 불황기에 어떤 방향으로 이동하는가를 재빠르게 파악해 당신의 상품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고객과의 대화시간을 늘려 '우리와 함께 불황을 극복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좋은 전략일 것이다. 이런 메시지는 회사 직원들에게도 반드시 전달해야 한다. 직원들의 충성심이야말로 불황을 헤쳐 나가는 필수요건이다. "

최인한 기자/김영주 인턴(한국외대 4년) cocomon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