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금융위기와 脣亡齒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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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얼마 전 워싱턴에서 열렸던 G20 재무장관 회담에서 다소 의미심장한 연설을 했다.
"금융위기에 처한 신흥시장국이 외환보유액을 사용하려면 선진국 채권을 매각할 수밖에 없지요. 이는 신흥국의 금융불안이 선진국으로 전이되는 '리버스 스필오버(reverse spill-over)' 현상을 불러올 겁니다. "모르긴 몰라도 호스트였던 헨리 폴슨 미국 재무장관의 기분이 꽤 껄끄러웠을 듯 싶다. 강 장관이 폴슨에게 던진 메시지를 풀어보면 대충 이렇다.
"한국이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 외환보유액으로 시장 개입에 나서고 있다는 사실은 귀하도 잘 알고 있을 터.그러면 한국 외환보유액의 상당 부분이 미 국채라는 사실도 알고 있겠지.그러니 어쩌겠는가. 달러를 장만하려면 미 국채를 매각하는 수밖에.하지만 한국이 미 국채를 팔아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미국이 금융위기를 진정시키겠다고 7000억달러의 공적자금을 마련한다면서.그 중 꽤 많은 부분은 국채 발행으로 채워지지 않겠나. 한국 같은 신흥시장국이 미 국채를 내던지는데 그럼 새로 발행하는 국채는 누가 사주지.결국 미국이 거꾸로 다칠 거란 말씀."
그게 '리버스 스필오버'다. 강 장관은 그러면 왜 이런 얘기를 했을까. 그 답도 간단하다. 선진국들이 금융위기를 G7의 틀 안에서만 풀어보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그래선 선진국이 되레 큰 코 다칠 것이란 경고인 셈이다. 신흥시장국들을 포함한 G20이 해결의 틀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강 장관의 주장은 '공갈'이 아니다. 따져보자.G7이 뭔가. 미국을 비롯한 영국 일본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등 선진 7개국의 모임이 아닌가. 하지만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자.사태의 진앙지인 미국의 문제 해결에 보탬이 될 만한 나라는 1조달러의 외환을 보유한 일본 한 곳에 불과하다.
그러면 미 채권을 받아줄 나라는 어디인가. G20 국가밖에 없다. 무엇보다 1조8000억달러 규모의 외환보유액을 갖고 있는 중국이 그렇고,한국 인도 브라질 등이 그렇다. 중국은 이미 2000억달러 규모의 미 국채를 더 사주기로 하질 않았는가. 물론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중국의 6분의 1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미국이 쉽게 볼 수가 없다. 모든 국채를 중국에 떠안길 수 없는 처지여서다. 중국이 미국 경제를 쥐락펴락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한국의 궁극적인 노림수는 이미 오래 전부터 추진해온 양국 간 통화스와프를 실현하는 일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시 한국은행이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 원화를 맡기고 그만큼의 달러를 받아오는 방식이다. 그래야 한국도 안정되고,미국도 안정될 수 있다. 미국은 이미 8개 선진국과 이런 계약을 맺고 있다. 스위스프랑까지도 스와프 대상이다.
미국 등 선진국이 어떤 조치를 취하건,한국이 어떤 묘안을 내놓건 '글로벌 공조'가 아닌 한 효과는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불은 미국에서 났지만 전 세계로 옮겨붙어 활활 타들어가고 있다. '국지전' 양상의 1997년과는 전혀 다르다는 얘기다. 한국 등 신흥시장국이 배제되면 선진국도 해법을 찾을 수 없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교훈이다. 내달 워싱턴에서 열리는 G20 금융정상회의와 한ㆍ미 정상 간 대화를 지켜볼 일이다.
김정호 경제부장 jhkim@hankyung.com
"금융위기에 처한 신흥시장국이 외환보유액을 사용하려면 선진국 채권을 매각할 수밖에 없지요. 이는 신흥국의 금융불안이 선진국으로 전이되는 '리버스 스필오버(reverse spill-over)' 현상을 불러올 겁니다. "모르긴 몰라도 호스트였던 헨리 폴슨 미국 재무장관의 기분이 꽤 껄끄러웠을 듯 싶다. 강 장관이 폴슨에게 던진 메시지를 풀어보면 대충 이렇다.
"한국이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 외환보유액으로 시장 개입에 나서고 있다는 사실은 귀하도 잘 알고 있을 터.그러면 한국 외환보유액의 상당 부분이 미 국채라는 사실도 알고 있겠지.그러니 어쩌겠는가. 달러를 장만하려면 미 국채를 매각하는 수밖에.하지만 한국이 미 국채를 팔아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미국이 금융위기를 진정시키겠다고 7000억달러의 공적자금을 마련한다면서.그 중 꽤 많은 부분은 국채 발행으로 채워지지 않겠나. 한국 같은 신흥시장국이 미 국채를 내던지는데 그럼 새로 발행하는 국채는 누가 사주지.결국 미국이 거꾸로 다칠 거란 말씀."
그게 '리버스 스필오버'다. 강 장관은 그러면 왜 이런 얘기를 했을까. 그 답도 간단하다. 선진국들이 금융위기를 G7의 틀 안에서만 풀어보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그래선 선진국이 되레 큰 코 다칠 것이란 경고인 셈이다. 신흥시장국들을 포함한 G20이 해결의 틀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강 장관의 주장은 '공갈'이 아니다. 따져보자.G7이 뭔가. 미국을 비롯한 영국 일본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등 선진 7개국의 모임이 아닌가. 하지만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자.사태의 진앙지인 미국의 문제 해결에 보탬이 될 만한 나라는 1조달러의 외환을 보유한 일본 한 곳에 불과하다.
그러면 미 채권을 받아줄 나라는 어디인가. G20 국가밖에 없다. 무엇보다 1조8000억달러 규모의 외환보유액을 갖고 있는 중국이 그렇고,한국 인도 브라질 등이 그렇다. 중국은 이미 2000억달러 규모의 미 국채를 더 사주기로 하질 않았는가. 물론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중국의 6분의 1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미국이 쉽게 볼 수가 없다. 모든 국채를 중국에 떠안길 수 없는 처지여서다. 중국이 미국 경제를 쥐락펴락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한국의 궁극적인 노림수는 이미 오래 전부터 추진해온 양국 간 통화스와프를 실현하는 일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시 한국은행이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 원화를 맡기고 그만큼의 달러를 받아오는 방식이다. 그래야 한국도 안정되고,미국도 안정될 수 있다. 미국은 이미 8개 선진국과 이런 계약을 맺고 있다. 스위스프랑까지도 스와프 대상이다.
미국 등 선진국이 어떤 조치를 취하건,한국이 어떤 묘안을 내놓건 '글로벌 공조'가 아닌 한 효과는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불은 미국에서 났지만 전 세계로 옮겨붙어 활활 타들어가고 있다. '국지전' 양상의 1997년과는 전혀 다르다는 얘기다. 한국 등 신흥시장국이 배제되면 선진국도 해법을 찾을 수 없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교훈이다. 내달 워싱턴에서 열리는 G20 금융정상회의와 한ㆍ미 정상 간 대화를 지켜볼 일이다.
김정호 경제부장 j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