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재포럼 2008 D-6‥(8) 인재가 미래다] 호주는 유학생 천국 ‥ 교육으로 사회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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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브리즈번 시의 문화 중심지인 사우스뱅크 지역에 자리 잡은 '사우스뱅크 기술전문학교(SBIT)'.한국의 전문대 간호학과 같은 곳이다. 한 강의실에서 30여명의 학생들이 의학 기자재에 대한 교수의 설명을 듣고 있다. 얼핏 보아 강의실은 인종 전시장이다. 유럽계 백인은 물론 아시아계도 6~7명 된다. 호주 원주민(Aborigin) 출신 학생들도 2명 보인다. 히잡을 둘러쓴 아랍계 학생도 1명 있다. 환자와 똑같이 만든 인형(더미)을 상대로 인도계로 보이는 학생이 인공호흡 설비를 작동한다. 그러자마자 백인 여학생이 "잘한다"고 추임새를 넣는다.
교정을 안내하던 일본계 호주인인 사치코 데이비스 컨설턴트는 "실습 위주의 교육 과정 때문인지 학생들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며 "인종적 문화적 출신 배경이 다양한 학생들이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100여개 학과 2만8427명의 SBIT 학생 가운데 10%가 넘는 2921명이 외국인 유학생"이라며 "그들도 호주 학생과 똑같이 실습 위주 수업에 참여한다"고 소개했다. 호주의 인구는 2122만명이다. 유럽계가 85%로 가장 많다. 아시아계도 9%를 차지한다. 호주 원주민이 3%,아랍계가 1.4%를 차지할 정도로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돼 있다. 유학생까지 합치면 인종은 더욱 다양하다. 일시적으로 체류하는 유학생만 45만명에 달한다. '워킹 홀리데이(Working Holidayㆍ1년 단기 취업 혹은 어학 연수)'로 방문하는 젊은이도 13만5000명에 이른다. 그러다 보니 호주는 전형적인 다문화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이처럼 여러 인종이 어울리는 사회이다 보니 사회 통합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호주는 그 수단으로 교육을 꼽고 있다. 초ㆍ중ㆍ고교와 대학 과정을 통해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서로 어울리게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다문화 사회를 이해토록 하기 위해서다. 이 과정에서 서로의 장ㆍ단점을 흡수해 글로벌 마인드를 형성하고 창조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퀸즐랜드 주정부의 존 미켈 교통통상노동산업 장관은 "다문화 사회의 통합은 정부가 가장 중시하는 분야"라고 강조했다. '이해'와 '관용'이라는 교육 과정을 통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배출하는 게 호주 교육의 강점이라는 설명이다.
브리즈번 워리걸 초등학교에서는 최근 '중국의 날' 행사를 가졌다. 중국계 학부모들이 대거 학교로 몰려와 중국의 차(茶) 문화에 대해 소개하는 등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했다. 중국 음식도 만들어 보이고 "니 하오마(안녕하세요)" 등 간단한 중국어 인사법도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이 학교 학부모의 출신 국가는 모두 53개국.학교는 수시로 학부모들을 초청해 출신 국가의 문화를 소개하도록 하고 있다. 학생들이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서로의 가치를 존중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서다. 호주 연방정부도 다문화 사회에 대한 이해와 사회 통합을 교육 정책의 주요 목표로 삼고 있다. 이는 호주 교육 과정의 방향을 제시하는 1999년 '애들레이드(Adelaide) 선언'에 잘 나와 있다. 다름 아닌 '능동적 시민' 육성과 함께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그것이다. 모든 학교들은 문화적 다양성을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게 골자다.
공용어인 영어와 제2외국어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는 것도 사회 통합을 위해 강조하는 부분이다. 모든 이민자들은 초ㆍ중ㆍ고교 등 각급 학교에 들어가기 전 'ESL(외국인을 위한 영어 강좌)' 프로그램을 통해 영어를 배워야 한다. 비용은 전액 국가나 주정부가 부담한다. 읽기 수학 등이 다른 학생들에 비해 뒤처질 경우 'LNSLN'(읽기ㆍ쓰기ㆍ수학 보충학습)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충분히 학습하도록 돕는다.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 역시 정부가 부담한다.
짐 데이비슨 호주 교육부 차관은 "LNSLN에만 2005년부터 지금까지 20억호주달러(1조7690억원)를 투입했다"며 "사회적 약자라고 할 소수 민족 출신 학생들에게 더 많은 교육 예산을 지원하는 게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문화적 다양성 존중과 사회 통합의 교육은 호주를 세계적인 교육 강국으로 만들고 있다. 데이비슨 차관은 "영어를 쉽게 배울 수 있는 데다 유학생으로서의 차별을 잘 느끼지 못한다는 점 때문에 아시아권 학생들이 호주로 유학을 많이 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호주국립대(ANU)의 테드 매데스 교수는 "유학생이든 호주계 학생이든 문화적 배경의 차이는 거의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유학생들이 증가하면서 작년에 호주가 벌어들인 교육 관련 외화 수익은 125억호주달러(11조563억원)에 달했다. 최근 10년 동안 매년 15% 이상의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 유학생 출신 국가별로는 중국이 27억호주달러를 사용했다. 인도도 16억호주달러를 지출했다. 한국의 유학생이 사용한 돈도 9억호주달러에 이른다. 아시아권 국가 유학생들이 교육 산업의 주된 대상인 셈이다.
어찌됐건 교육은 석탄(208억호주달러)과 철광석(161억호주달러)에 이어 호주 제3의 '수출 상품'으로 당당히 자리 매김하고 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교육을 통해 사회 통합도 이루고 돈도 버는 게 호주다. '꿩 먹고 알 먹는' 셈이다.
브리즈번ㆍ캔버라(호주)=정태웅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