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구 칼럼] '주변인' 오바마

이봉구 <수석논설위원 bklee@hankyung.com>

인종·문화적 다양성이 통찰력 키워외국인 100만시대 열린사회 만들어야

대인은 소수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분야에 걸쳐 걸출한 인물을 수없이 배출해냈다. 그 원동력은 무엇일까. 많은 공감을 얻은 이론은 그들이 세계 각지에서 천대를 받으며 떠돌이 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문화의 장점을 몸에 익힌 때문이라는 학설이다. 이른바 '주변인'이었던 탓에 문화적 다양성과 사고(思考)의 유연성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주변인은 두 개의 세계에 살지만 어느 곳에서도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확실한 소속감도 갖지 못한 사람을 일컫는다. 미국에 이주한 아프리카 흑인이나 뮬라토(흑백 혼혈인)도 이에 속한다. 이 개념을 사회학에 처음 도입한 로버트 에즈라 파크는 주변인들은 불이익을 겪게 마련이지만 그로 인해 장점 또한 많이 갖게 된다고 강조했다. 상대적으로 넓은 시야와 예리한 지성,합리적 관점을 지니게 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능력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저서 '유한계급론'과 '베블렌 효과' 등으로 널리 알려진 경제학자 겸 사회학자 토스타인 베블렌 역시 유대인의 지적 우월성에 주목하면서 그 이유를 그들의 주변인적 특성에서 찾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전형적 주변인이다. 아프리카 흑인 피를 물려받은 뮬라토인 데다 아시아계가 많은 하와이와 인도네시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젊은 시절엔 피부색깔에 절망하고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면서 마약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최고의 교육을 받고 상원의원을 지내는 등 주류사회의 혜택도 누렸다. 말하자면 그는 인종이 융합되고 다양한 문화가 결합된 퓨전인간이다. 로버트 E 파크가 얘기했듯 그런 복합성이 뛰어난 통찰력으로 연결됐고 그것이 대통령직에까지 오르는 승리의 원동력이 됐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의 참모들이 오바마처럼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정치인은 없다고 입을 모으는 것을 봐도 균형적 시각과 유연한 사고방식이 몸에 배어 있음이 드러난다.

그가 대통령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할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이런 특성은 앞으로의 통치과정에도 반영될 게 틀림없다. 기회균등 인권 서민에 대한 배려 등이 중요한 정책기조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다. 다양한 분야,다양한 계층에서 인재를 등용할 것이고 한인사회 등 소수민족에게도 기회가 늘어날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과거 어느 정권보다 분배와 복지를 강조하면서 중산층과 빈민층에 대한 지원을 늘릴 공산이 크다. 대외적으로는 일방주의 대신 상대국의 입장을 존중하면서 협력을 구하는 상호주의 경향이 증대될 것으로 관측된다.

오바마의 미국 대통령 당선은 노예로 팔려온 아프리카 흑인들이 인종차별과 편견에서 해방되고 있음을 보여준 인류사적 사건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소수민족도 얼마든지 아메리칸 드림의 실현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함으로써 미국을 진정한 하나의 통합국가로 만든 사건이기도 하다. 전 세계적으로 소외된 소수민족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는 차원에서도 의미가 깊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사정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산업현장에서 땀을 흘리는 외국인들이 크게 늘어나는 등 국내 체류 외국인은 이제 100만명을 헤아린다. 국제결혼의 증가로 다민족 가정도 급증 추세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관심은 아직도 부족하기 짝이 없다. 차별과 부당한 대우에 시달리는 경우 또한 적지 않다.

국적이나 인종 같은 태생적 차이가 사회적 차별로 연결돼선 곤란하다. 그들은 우리 사회의 장·단점을 가려내고 보다 보편성을 가진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다. 글로벌 시대에는 단일민족 단일문화에 매달리는 게 능사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주변인들을 가족으로,이웃으로 받아들이면서 다문화 사회,열린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