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의료 한류' 왜 안되나

글로벌 경제 위기로 취업난과 실업난이 심화되면서 의사의 인기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고소득과 명예가 뒤따르는 데다 정년이 따로 없고 해고 위협도 적다. 이를 반영하듯 의예과나 의치학전문대학원의 커트라인은 떨어질 줄 모른다.

문제는 천하의 인재들이 몰리고 있는 의료계가 의료수준이나 효율성 측면에서 걸맞은 성과를 내는지는 의문이라는 점이다. 대기업 회장들이 중증 질환에 걸리면 미국의 전문 병원에서 치료받는 관행은 여전하고 전문의들도 최신 의학정보를 알기 위해 미국에서 열리는 학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것만 봐도 의료선진국과의 격차가 좁혀지지 않았음이 입증된다. 여기에는 낙후된 기초과학,낮은 보상,경직적인 건강보험수가 체제 등 이유가 숱하지만 의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시절 '돌팔이' 양산을 막기 위해 의사 한 명이 한 개의 병원만 설립할 수 있게 했던 수십년 된 의료법 탓도 적지 않다. 의료법은 의료기관 설립 주체를 의사와 비영리법인으로 제한하는 데다 누적된 이익잉여금으로만 자본을 조달하도록 하고 있다. 환자를 유치하거나 알선하는 행위도 과잉진료를 유발한다는 이유 등으로 불허할 정도로 규제투성이다. 이런 상황에선 원화가치 하락으로 외국인 환자가 국내에서 '메디컬 쇼핑'을 즐길 기회가 커진다 해도 의료기관이 특수를 누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고 병ㆍ의원을 방치하는 것은 국익에 어긋난다. 장차 한국을 먹여 살릴 성장동력으로 차세대 이동통신,로봇,바이오ㆍ신약ㆍ의료가 손꼽힌다. 과거 1960,70년대 우수 인력들이 전자공학과 등 공대로 앞다퉈 진학한 덕분에 반도체 전자 자동차가 세계적인 수준에 오른 것처럼 80년대 이후 이공계 엘리트들이 집중된 분야인 의료계를 최대한 활용해야 할 때가 왔다. 더구나 고급화된 소비자 수요,의학기술의 급변,의료시장 개방으로 의료산업의 경쟁력 향상은 국가적 과제가 된 지 오래다. 패러다임을 개혁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점에서 외국의 사례는 참고할만하다. 싱가포르는 1997년 이후 보건의료,금융,보험,물류 등을 집중적으로 키웠다. 의료서비스 분야의 경우 민간 대형 병원에 대해 '주식회사형 병원'의 설립을 허용한 뒤 주식 상장,의료광고,프랜차이즈 사업,건강기능식품 판매,해외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익사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싱가포르는 아시아의 의료 허브로 자리매김했다.

규제만 풀고 적절한 지원만 뒤따른다면 우리도 가능하다. 성형외과,피부미용,노화방지 분야 등을 육성하고 한류문화와 결합시킨다면 '한류의료'의 붐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아울러 환자 유치 금지조항에 대한 합리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의사가 아닌 사람이나 법인도 병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의료산업의 진입장벽을 낮춰 병원 간 경쟁을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기술수준과 서비스의 질을 함께 높여야 한다. 합리적인 경영을 통해 진료 이외의 서비스를 개발하고 의료관광상품을 확충하며 제약 바이오 등 연관 산업과의 전략적 제휴에 적극 나선다면 의료산업도 자동차나 반도체 등과 같은 제2의 수출산업이자 달러박스가 될 수 있다.

최승옥 과학벤처중기부장 sw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