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 대주단 가입놓고 '잠못이룬 주말'

살생부는 아닐까 … 30여곳 막판 '눈치'

"주말에 휴식은커녕 식사도 제대로 못 했습니다. 회사는 돈이 말라 죽을 지경인데 은행권은 신규 대출은 고사하고,살생부 작성을 위한 대주단 가입만 하라고 닦달이니 앞이 캄캄해서죠."(A건설사 자금담당 L상무)시공능력 순위 100위권 건설업체들은 금융권이 통보한 '대주단(은행권이 결성한 채권단) 자율협약 일괄가입' 1차 마감 시한(17일)을 앞두고 극도의 초조감과 갈등으로 주말을 보냈다. 자칫하면 실속도 없이 부실업체라는 낙인만 찍혀 오히려 '긁어 부스럼'만 만든 꼴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치열한 눈치작전을 펼쳤다. 은행권에선 대주단 1차 가입에 신용등급 BBB― 이상의,30∼70위의 중위권 중심으로 30개 안팎의 회사가 가입을 신청할 것으로 예상했다.

◆"보약이냐 사약이냐" 갈등

지난 주말 대한건설협회와 대주단에는 건설사들의 대주단 협약 가입 문의가 줄을 이었다. 건설협회가 지난 12일 회원사에 대주단 가입을 종용하는 공문을 보냈기 때문이다. 건설협회 관계자는 "질문 요지는 대부분 가입 실효성과 부작용,미가입시 불이익 등이었다"며 "상당수의 중견업체들은 대주단 가입으로 자칫 자구노력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단박에 퇴출당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견 건설업체인 A사는 16일 "지난 주말에 가입하려다 업계 분위기를 더 지켜보고 최종 마감 시한에 결정키로 했다"며 "대주단 가입이 경영난에 '보약이 될지,사약이 될지'에 대한 결정을 아직까지 못내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견업체인 B사 한 임원은 "휴일인데도 출근해 다른 회사 재무담당자들과 통화를 하면서 논의했지만 판단을 못 내렸다"고 불안해했다.

대형업체들도 갈등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시공능력 순위 10위권 업체인 C사는 "대형업체들도 미분양과 PF(프로젝트 파이낸싱)자금 등으로 경영이 어렵기는 중견업체와 비슷한데 외부에는 상당히 안정된 것으로 알려져 있어 고민"이라고 말했다. 건설협회 관계자는 "마감시한을 앞두고 저울질을 하고 있지만 중견업체의 경우 특별한 대안이 없어 대부분은 가입할 것으로 예상되고,20위권 이내 대형업체들도 당장 유동성에 문제가 없는 S,L,H사 등 4~5개를 빼고는 절반 이상이 가입할 것"으로 전망했다.

◆건설사에 가입 권유하는 은행들
은행들은 주거래 관계에 있는 건설사의 대주단 가입 신청 여부를 확인하는 한편 건설사별로 신용상황과 여신정보를 확인하는 등 가입 승인을 위한 내부 검토작업을 벌였다. 은행들은 1차 신청대상인 100대 건설사 중 상위 10위권 건설사보다는 신용등급 BBB― 이상의,30∼70위의 중위권 중심으로 가입 신청이 몰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은행연합회 측은 "1차로 30개 안팎의 회사가 가입을 신청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워크아웃보다는 훨씬 관대한 조건이 적용되는 만큼 대부분 만기연장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100대 건설사 중 21개사와 주거래 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은행의 경우 대우건설 삼성물산 GS 대림 SK 롯데 등 대그룹 계열회사보다는 50위권 안팎의 중위권 건설사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형 건설사들은 신용도나 자금 사정에 큰 문제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농협의 경우 16개 주거래 관계에 있는 건설사 중 10개 안팎이 신청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은행도 상위 업체를 제외한 모든 주거래 건설사에 가입 신청을 권유했다면서 꽤 많은 업체가 신청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은행연합회의 기대와 달리 대주단 가입이 거부될 경우 사실상 '사형선고'를 받게 되는 만큼 기대만큼의 신청이 접수될지는 미지수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대주단 협약이 강제 퇴출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될 것이라는 것은 오해"라면서 "일단 100대 건설사를 중심으로 대주단을 실효성 있게 만든 뒤 200∼300대 건설사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영신/이심기/정인설 기자 ys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