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기에 더 거세진 특허전쟁

스펜션ㆍ코닥 등 美업체, 삼성ㆍLG전자에 줄소송

글로벌 경기침체 여파로 특허권과 관련된 기업들 간 소송이 늘고 있다. 최근에는 금융위기 진원지인 미국의 기업들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권 국가의 기업들을 상대로 특허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두드러지고 있다. 불경기에는 제품력으로 매출을 확대하는 '정공법'이 잘 먹혀들지 않기 때문에 특허소송 등 우회적인 방법을 통해 경쟁사에 '흠집'을 내는 전략을 쓰는 업체들이 늘어난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제품간 컨버전스(융합) 경향이 뚜렷해지면서 다양한 기능을 하나의 기기에 집약하는 사례가 많아진 것도 특허소송 건수가 늘어난 원인 중 하나다. 사용 기술이 많아질수록 특허 침해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지적이다. 신기술뿐 아니라 상표권 등 지식재산권과 관련된 분쟁도 증가하는 추세다.

◆미국 기업들,특허소송 잇달아 제기

미국의 플래시 메모리 업체인 스팬션과 영상 관련 제품을 만드는 이스트만 코닥은 18일 삼성전자와 LG전자가 특허권을 침해했다며 각각 소송을 제기했다. 스팬션은 삼성전자가 자사의 특허를 침해한 플래시 메모리로 휴대폰과 디지털카메라 등을 생산,2003년부터 지금까지 300억달러 이상의 부당이득을 챙겼다며 미국 연방 국제무역위원회(ITC)와 델라웨어주 지방법원에 제소했다. 스팬션의 소송 대상에는 애플,소니에릭슨 등 삼성 플래시 메모리를 탑재한 휴대전화와 MP3플레이어 등을 생산하는 업체들도 포함됐다.

이스트만 코닥도 이날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자사의 기술을 도용,카메라폰을 제작하고 있다며 양사의 디지털 카메라가 내장된 휴대전화 수입을 금지해 달라는 내용의 소장을 ITC에 제출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디지털 이미지를 캡처,압축,저장하는 기술 등에 대한 특허를 침해했다는 것이 이스트만 코닥 측 주장이다.

LG전자는 이에 대해 "우리회사 제품에 적용된 영상 기술은 코닥의 기술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라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스팬션과 이스트만 코닥 두 곳으로부터 제소를 당한 삼성전자도 "근거없는 주장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국내업체 특허소송 피소 건수 급증

삼성전자가 경쟁업체로부터 특허소송을 당한 케이스는 2006년 12건에서 올 들어 23건으로 급증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경기 불황의 요인을 따지지 않더라도 컨버전스 제품을 출시하는 한 특허소송에서 자유롭기 힘들다"며 "특허 문제로 인한 불이익을 최소화하기 위해 관련 부서의 역량을 강화하는 등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경향은 LG전자도 동일하다. LG전자의 특허소송 계류건수는 고소와 피소를 합해 2006년 30건에서 올 들어 40건으로 25% 증가했다. 회사 관계자는 "통상 연말ㆍ연초에 특허소송이 많이 제기돼 촉각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새 정부 보호무역 움직임이 변수

업계에서는 한국 기업들이 향후 미국 기업과의 특허소송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공약으로 내세운 보호무역 정책이 특허소송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 업체들이 휘말려 있는 특허소송의 대부분은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미국 법무부가 한 국내 디스플레이 업체에 담합 혐의를 적용해 사상 두 번째로 큰 규모인 4억달러의 과징금을 부과한 것도 보호무역을 강화하려는 최근의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며 "특허침해 문제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ITC나 미국 법원도 이 같은 분위기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