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기금 8000억 운용권 갈등

방통위 "통신사가 낸 돈…방통기금 신설"
지경부 "IT진흥정책에 맞춰 우리가 관리"
관련법 제정 공청회

정보기술(IT) 연구개발 지원에 쓰이는 연간 8000억여원 규모의 정보통신진흥기금(정통기금) 운용권을 둘러싸고 지식경제부와 방송통신위원회 간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최근 청와대까지 중재에 나섰으나 부처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또 도진 부처 간 힘겨루기

방통위는 21일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방송통신 발전에 관한 기본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를 열고 지경부가 운용 중인 정통기금의 일부를 가져온 뒤 현행 방송발전기금과 합쳐 '방송통신진흥기금'을 신설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방통위는 다음 달 중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방송통신발전 기본법 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이날 공청회에서 주제발표에 나선 장석영 방통위 정책총괄과장은 "통신사가 낸 돈으로 조성된 정통기금은 통신산업 주무부처인 방통위에서 운영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지경부가 이 기금을 반도체 컴퓨터 등의 산업을 지원하는 데도 사용,기금 관리 원칙을 위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유수근 지경부 정보통신총괄과장은 "IT산업 진흥 업무가 지경부로 넘어온 만큼 방통위가 기금을 새로 설치해 IT 진흥정책을 펴려는 것은 정부조직 개편 원칙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중재에 나선 허경욱 청와대 국책과제비서관은 "이른 시일 내에 두 부처 간 합의를 이끌어낼 계획이지만 양쪽 입장차가 워낙 커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정통기금의 모태인 옛 정보화촉진기금은 1993년 중소 IT기업의 기술 개발 등을 지원할 목적으로 조성됐다. 이동통신용 주파수 할당대가와 통신사의 연구개발 출연금 등으로 조성돼 지난해 정보통신부가 8951억원을 집행했고 올핸 지식경제부가 9281억원을 운용 중이다.

◆부처 싸움에 기업들만 불안

지경부와 방통위는 지난 6월 협의를 거쳐 내년 정통기금 사업비를 8144억원으로 확정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홈네트워크 소프트웨어 등의 기술개발에 6000억원,방송·통신 및 콘텐츠 기술개발에 2100억원가량 등을 각각 지원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통신회사들은 출연금 등으로 돈을 냈는데 기금의 70%가량이 통신 외의 IT분야에 투입된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BcN(광대역통합망),인터넷TV(IPTV),와이브로 등의 활성화를 위해 집중적인 연구개발 투자가 필요한데도 엉뚱한 곳으로 기금이 빠져나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부품 등 중소 IT기업들도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중소 정보보안업체 관계자는 "정통기금이 방통위로 넘어가면 IPTV 와이브로 연구개발 지원 등에 집중될 공산이 높다"며 "부처 간 싸움에 150여개 중소 IT벤처기업에 지원되는 기술개발 자금(380억원)마저 없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부처 간 운영권 다툼을 떠나 기금의 활용 잣대를 명확하게 세우고 IT 전반에 걸쳐 지원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