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 'F 마이너스' 폴슨

'F 마이너스'.월가 금융인들이 헨리 폴슨 미국 재무장관에 매긴 대체적인 성적표다. 붕괴 직전의 금융시스템을 지키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인 데 비하면 인색한 평가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대공황 이후 최대 경제위기에서 빚어진 정책 표류는 대가가 너무 크다고 불만이 적지 않다. 위기관리 능력이 떨어지는 정책 책임자들에 대한 실망은 시장 혼란으로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주가는 곤두박질치고,신용위험은 다시 커졌다. 1조달러가량의 자금을 시장에 쏟아붓고도 다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월가가 보는 폴슨 장관의 치명적인 정책 실패는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방치다. 지난 3월 파산위기에 몰린 베어스턴스는 290억달러 공적자금을 투입해 JP모건체이스에 넘긴 데 비해 9월 리먼은 담보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 공중분해시켜 버렸다. 이후 시스템 위기 우려가 불거지면서 신용공황이 왔다. 일관성 없는 정책은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는 신호를 보냈다. 폴슨 장관의 정책에 얼마나 실망했으면 후임 재무부 장관에 티모시 가이트너 뉴욕연방은행 총재가 내정될 것이란 보도만으로 주가가 폭등했을까. 7000억달러 규모의 구제금융 프로그램(TARP) 운용도 오락가락 정책의 전형이다. 구제금융 목적이 금융시스템 보전에 있었다면 의당 금융사에 대한 자금 수혈로 해법을 마련해야 했다. 유럽 각국도 그렇게 했고 역사적으로 봐도 그게 검증된 방법이다. 한데 폴슨 장관은 이런저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악성 부실자산을 사줘야 한다며 우격다짐식으로 의회에서 예산을 타냈다. 그리고는 이제 와서 지원 방법을 금융사 및 소비자금융 지원 쪽으로 바꾸겠다고 태도를 바꿨다. 다급해진 씨티그룹을 구하기 위해 정부가 부실자산 일부라도 떠맡게라도 되면 그땐 무슨 소리를 할지 모를 일이다.

더욱이 '빅3' 자동차회사와 씨티가 벼랑 끝에서 신음하고 있는데 폴슨 장관은 "7000억달러의 구제금융자금 중 2차분(3500억달러)을 쓰기 위해 의회에 가지 않겠다"고 밝혔다. 전쟁터에서 피를 철철 흘리는 부상자들이 넘쳐흐르는데,임무 교대를 앞둔 대대장이 자신은 의약품을 더 이상 쓰지 않겠다고 말한 형국이다. 경제정책 수장의 위기에 대한 인식관이 뚜렷하게 드러나자 "앞으로 어떻게 두 달을 더 버티겠는가"라는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래서 리스크를 일단 피하고 보자는 집단심리가 급속히 형성된 것이다.

폴슨 장관의 잘못은 또 있다. 대규모 구제금융을 추진하면서 금융사들이 정확히 뭘 잘못했는지조차 꾸짖지 않았다. 리스크를 관리해야 할 은행들은 돈을 벌기 위해 오히려 리스크를 창출하는 데 앞장섰고,경영진은 단기수익을 올려 스톡옵션으로 자기 배를 채웠는데도 반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금융감독 개편은 차기 정권으로 한참 전에 넘겼다.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가 "1932년 대공황기와 2008년 미국 위기의 공통점이 바로 권력 공백"이라며 표류하는 경제정책을 비판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의 정책당국자들도 위기 때 시장에 신뢰를 심어주지 못하면 낙제점을 받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듯싶다.

뉴욕 이익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