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2008 교실이데아

김정래 <부산교대 교수.교육학>

결론부터 말하자면,'채무불이행(상태)' 또는 '의무불이행(상태)'으로 번역되는 디폴트 스테이트(default state)가 요즘 논의되는 학교자율화의 필요조건이고 요체이다. 이 견해에 많은 사람들이 선뜻 수긍하지 못하는 것은 번역어가 갖는 부정적인 의미 때문이다. 그러나 '디폴트 스테이트'는 경제학의 부정적인 의미 외에 '일체의 인위적 과정이 요구되지 않는 자연적 상태'라는 의미도 갖는다. 여기서 '자연적 상태'라고 하는 것은 루소가 강조하는 '자연'이나 마르크스의 역사단계에서 말하는 원시공산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이보다 하이에크(F.A.Hayek)가 말하는 '자생적 질서(spontaneous order)'가 작동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자생적 질서가 생동하는 상태는 두말할 필요없이 국가나 외부의 인위적 개입이 없거나 배제된 상태를 지칭한다. 따라서 학교자율화는 국가 또는 교육당국의 개입이 없는 상태(즉 디폴트 스테이트)에서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이와는 반대로 가고 있거나 허울만 '학교자율'을 내세우고 국가개입(state intervention)이 자행되고 있다.

자율화에 반대로 가고 있는 경우가 평준화 정책을 고수하는 것이다. 평준화 아래서 학교 차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학교평가 교원평가 등의 책무성과,개별 학생 간의 학력에 따른 변별력을 제대로 물을 수 없는 교육적 문제는 제쳐두고라도 교육 주체인 학교의 학생선발권과 학생의 학교선택권이 당국에 의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는 점이 학교자율의 전제인 디폴트 스테이트와 정반대로 가는 경우이다.

듣기 좋게 '학교자율'의 허울만 세운 경우가 지난 10월 서울시교육청이 발표한 이른바 '고교선택제'이다. 고교선택제의 골자는 1차로 서울 전역의 학교에서 선택토록 해 20% 학생을 배정하고 2차에서 탈락자 중 학군 내에서 원하는 학교를 선택하게 해 40%를 배정하고,나머지 40%는 학군 내 근거리학교에 '강제' 배정한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선택과 자율을 준 것처럼 보이지만,현행 일괄 배정 방식보다 더 나쁜 방식이다. 마지막 단계의 40% 학생이 겪을 심리적 좌절감은 무엇으로 보상할 것인가. 무엇보다 이 방식은 자신의 학력(學力)이나 공과(功過)에 따른 것이 아니어서 아이들에게 사행심만 조장하는 반(反)교육적 처사이다. '자율'은 말 그대로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뭔가를 선택하고 그에 따른 책무성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 현행 평준화와 허울뿐인 '고교선택제'는 전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학교자율에 한발짝도 근접하지 못하는 것이다. 두 가지 모두 국가개입을 당연한 전제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면 학교자율이 왜 디폴트 스테이트로 이해되어야 하는가. 첫째,디폴트 스테이트로 가지 않으면 국가 또는 교육당국이 개입하게 돼 엄청난 비용이 발생한다. 예를 하나만 든다면,평준화 지역의 사립고등학교에 지급하는 보조금만 연간 4조원 정도다. 사립학교를 평준화에서 벗어나게 하고 이 비용으로 공립학교에 지원하면 전교조와 좌파가 줄기차게 외치는 공립학교의 '공교육의 내실화'를 기할 수 있다. 둘째,디폴트 스테이트로 가면 교육의 다양성이 보장되고,교육경쟁력이 제고된다. 외부의 간섭과 개입이 없어야 뭔가를 이루려는 의지가 강해져 경쟁력이 생긴다. 국가개입이 심했던 참여정부의 2004~2006년에 교육경쟁력이 44위,40위,42위로 떨어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한국교육개발원 2007년 분야별 통계자료집 291쪽).학교자율은 장차 국가흥망을 좌우하는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