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수 STX회장 공격경영 재시동 "이번엔 열정의 땅 南美다"

브라질 등 방문…현지 기업인과 잇단 만남
조선·해운·플랜트 분야 신시장 개척 박차

"출장 기간을 나흘 더 늘리세요. " 지난달 ㈜STX 해외지원실에 강덕수 STX그룹 회장의 긴급 지시가 떨어졌다. 이명박 대통령의 남미 방문을 동행하는 일정을 짤 때 별도의 스케줄을 추가하라는 것.이로 인해 경제사절단에 속한 대부분의 기업인들이 한국으로 돌아온 24일에도 강 회장은 남미에 머물렀다. 공식 동행기간 중에도 대통령의 일정을 방해하지 않는 수준에서 시간 단위로 스케줄을 빽빽하게 채웠다. 밤을 낮 삼아 현지 기업인과 정부 인사를 잇따라 만나는 강행군을 했다.

강 회장 특유의 공격 경영에 다시 시동이 걸렸다. 불황기라고 몸을 움츠려서는 그룹의 미래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타깃은 남미로 정했다. 그룹의 주력인 조선업과 해운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시장이기 때문이다. 산업플랜트 등 STX그룹이 새롭게 뛰어든 분야에서도 남미는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지역이라는 판단이다.

◆발로 뛰는 CEO강 회장은 24일 이명박 대통령의 공식 일정이 끝나자마자 콜롬비아로 넘어갔다. 이 나라의 프란시스코 산토스 부통령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강 회장은 산토스 부통령과 만나 콜롬비아가 추진하고 있는 자원개발 해상운송 수리조선 등의 분야에서 STX그룹과의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콜롬비아 일정을 마친 뒤에는 브라질로 향했다. 브라질에서 진행중인 STX팬오션의 해운사업을 점검하고 리우데자네이루에 위치한 STX유럽(옛 아커야즈) 브라질 조선소도 방문했다. 짬짬이 브라질 경제계 인사들도 만났다. 새로운 수주를 따내고 신규 사업기회를 모색하기 위한 자리였다.

대통령 공식 방문 기간 중에도 해당 지역 주요 인사들에게 STX그룹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데 주력했다. 19일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을 만났을 때 '거북선 모형'을 선물한 것도 치밀한 계산이 깔린 행동이었다. STX그룹 관계자는 "강 회장은 4~5년 전부터 주요 고객인 해외 선주들과 국빈들에게 거북선을 선물한다"며 "한국 조선업의 오랜 역사와 우수성을 알리면서 자연스럽게 영업성과를 높이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번 출장에 김강수 STX조선 사장을 데려간 것도 신성장동력 발굴을 위한 사전 포석이다. 김 사장은 STX그룹내에서 조선·플랜트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해운과 조선에 집중돼 있는 그룹의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기 위해서는 플랜트 등을 통한 남미 시장 개척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제2의 창업을 준비한다

STX그룹의 주력 계열사는 STX팬오션과 STX조선이다. 각각 해운업과 조선업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내며 그룹을 이끌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세계 경제가 불황의 길목에 들어서면서 그동안의 성장세에 제동이 걸렸다. '글로벌 경기침체→물동량 감소→해운운임 하락→선박 발주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올초에 내세운 그룹의 야심찬 장기 전략도 안갯속으로 빠져들었다. 강 회장은 2012년까지 그룹의 매출을 50조원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동안의 성장 속도라면 해 볼 만한 수치였다. 2000년대 초반 2000억원을 겨우 웃돌던 STX그룹의 매출액은 올해 28조원을 웃돌아 100배 이상 증가할 전망이다. 작년 말에는 세계 최대 크루즈선 건조 회사인 아커야즈(현 STX유럽)도 인수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악화됐다. 특별한 돌파구를 찾지 않는 한 목표치 달성은 힘들 수밖에 없다. STX그룹은 이런 위기를 '해외시장 개척'을 통해 극복한다는 방침이다. 해운 조선 등 기존 사업분야는 물론 자원 개발에도 적극적이다.

"좁은 국내 시장에서 몇 등이냐를 놓고 다투기보다는 광활한 해외시장을 잡아야 살 수 있다"는 강 회장의 평소 지론이 투영된 결과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STX그룹은 아직 역사가 길지 않은 만큼 최고경영자인 강 회장의 역할이 다른 그룹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다"며 "강 회장이 얼마나 정확한 판단을 내리느냐에 따라 그룹의 명암이 크게 갈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