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경자유전' 버리는 일본

도쿄 인근 지바현에 사는 야마자키 히로시씨(79)는 올해부터 2헥타르(㏊)에 달하는 논을 놀리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여기에 벼를 심어 10t 정도의 쌀을 수확했다. 하지만 올해는 허리가 불편해져 모내기조차 하지 않았다. 매달 받는 연금으로 노부부가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어 내년에도 농사를 짓지 않을 생각이다.

야마자키씨처럼 나이가 들면서 농사를 포기하는 농민들이 늘어나자 일본 정부가 기업들의 농지 소유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농지법 개정을 추진중이다. 일본도 한국처럼 농지는 농민과 농업생산법인만 소유할 수 있다. 하지만 농업생산법인엔 규제가 많아 사실상 기업들의 참여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앞으론 규제를 풀어 기업들이 농업생산법인을 통해 농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게 일본 정부의 방침이다. 이 같은 법 개정이 실현되면 전후 일본 농지정책의 근간이었던 '경자유전(耕者有田)'원칙은 폐지되는 셈이다. 농민만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는 이 원칙의 폐지는 일본 농업의 일대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일본 정부가 60년 이상 지켜온 경자유전 원칙을 포기한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농촌 고령화로 휴경농지가 늘어나고 농업생산성이 떨어지는 건 일본 농업의 최대 현안이었다. 식량자급률이 39%까지 떨어진 일본으로선 농업생산성 향상이 절실했다. 대규모 기업농의 육성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기업농을 키우려면 경자유전 원칙을 철폐해야 하는 게 전제조건이다.

사실 이는 남의 얘기만은 아니다. 한국도 똑같다. 한국의 농가 인구는 2007년 기준 327만4000명으로 지난 10년간 200만명이나 줄었다. 게다가 농민중 60대가 33%,70대가 28%다. 40세 미만은 2.5%에 불과하다.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일본보다도 훨씬 낮은 27%에 그친다. 우리야말로 대규모 기업농이 절실하고,이를 위해 경자유전 원칙의 재고를 서둘러야 할 입장이다. 현실에 맞게 경자유전 원칙을 진작에 고쳤다면 최근 농민들을 화나게 했던 쌀 직불금 부당 수령같은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