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악화 대비 모든 정책수단 '재가동' 채비

공무원 책임 덜고 신속하게 … 기업 구조조정 박차
정부, 실물경제종합지원단 구성 … 대대적 현장점검

"경기침체가 당초 예상보다 더 빨리,더 깊게 오고 있다. 결국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 올 가능성이 높다. "최근 만난 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정부의 상황 인식이 그만큼 심각하다. 이 때문에 정부는 10년 전 외환위기 당시 썼던 정책 수단과 제도들을 언제든지 가동할 수 있도록 전부 꺼내놓고 준비하고 있다. 이미 채권시장안정펀드(당시 채권시장안정기금) 대주단협약(채권단협의회)은 진행하고 있고 '기업구조조정위원회'의 부활도 검토하고 있다. 지식경제부도 실물경제종합지원단을 구성,현장점검에 나섰다.

◆경기침체 본격화에 대비

대부분 경제 예측 기관들은 내년 연간 성장률이 2%대에 머물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전분기 대비 경제성장률은 올해 4분기나 내년 1분기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 국내 소비와 투자는 이미 감소세를 보이고 있는 데다 부동산 주식 등 자산가격도 크게 하락해 내수시장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 올해 20% 안팎의 증가율을 유지했던 수출도 곧 마이너스로 돌아설 전망이다.

내수와 수출이 모두 나빠지면서 고용 쇼크가 올 수도 있다. 손민중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내년 초에는 성장률이 추락하고 대규모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만큼 고용이 마이너스를 나타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부동산 가격 하락은 소비심리를 냉각시킬 뿐 아니라 주택담보대출,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과도 연관돼 있어 은행과 저축은행 등 금융회사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부동산 거품이 붕괴하면 실물자산이 팔리지 않기 때문에 부채를 갚기 위해 보유하고 있는 금융자산을 매각하거나 개인파산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모든 연장 다 꺼낸다

정부가 기업들의 회생 가능 여부를 판단해 구조조정과 부실 정리를 담당할 '기업구조조정위원회'를 검토 대상에 올려 놓은 것은 이처럼 경제 상황이 나빠져 기업이나 PF대출 등의 부실이 구체화되면 그 처리 방향을 신속하게 정하기 위한 것이다. 기업 구조조정과 부실 정리를 채권단에만 맡겨 놓을 경우 처리 방향 결정이 지지부진할 수 있고,정부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도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10년전 외환위기때 가동했던 구조조정 전담조직과 비슷한 성격의 기구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금융당국이 기업 구조조정과 관련,공무원과 금감원 임직원 등에 대한 면책을 추진하는 것도 신속하고 효과적인 구조조정을 위해서다. 미국은 최근 7000억달러 규모의 구제금융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구제금융 투입 결정과 집행 과정에서 재무부 관리들이 법원 재판이나 감사원 감사를 받지 않도록 하는 면책조항(긴급경제안정화법 8장)을 명시했다. 면책 조항은 양쪽에서 비판을 받을 수 있다. 하나는 해당 공무원이나 임직원들에게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를 조장한다는 지적이다. 구조조정 과정에 정부 돈이 들어가는 만큼 꼼꼼하게 따져봐야 하는데 면책조항을 신설하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론 아무리 면책조항을 넣더라도 담당자들이 나중에 추궁당할 것을 우려해 적극 나서지 않을 수도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위기 상황이 닥치고 있는 지금 그 같은 비판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일단 구조조정의 속도를 내는 게 중요하다"며 구조조정 담당자들에게 면책을 해줄 가치가 있다고 밝혔다.

정재형/김현석/류시훈 기자 j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