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 매니지먼트] 권영설의 Hi CEO ‥ 50대 A사장이 새벽까지 집에 안들어가는 이유는 …

중견 제조업체 전문경영인인 A사장(55)은 최근 몇 년 사이 후배들 사이에서 기피 인물이 됐다. 그와 골프를 나갔다 하루를 '공치는' 경험을 한 후배들이 늘어난 탓이다. 새벽 골프를 나갔다 다음 날 새벽에 술취해 귀가해 봤는가. 해보지 않았으면 말을 말라.집에서도 "정말로 골프치고 온 것 맞냐"는 억울한 의심을 받고,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다음 날까지 망친다. "다시는 그 선배하고 같이 나가나 봐라"고 다짐할밖에.골프장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그와의 저녁 약속은 부하들도 겁내는 '장기전'이다. 소주를 곁들인 식사를 하고,맥주를 마시고,노래방에 갔다가 마지막으로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 더하고,우동 한 그릇으로 해장해야 겨우 끝난다.

원래는 매너 좋기로 유명했던 그다. 사람들은 해박한 지식과 세련된 화술을 자랑하는 그를 항상 부러워했다. 그런 그가 몇 년 사이 엄청 변했다. 한번 만나면 도대체 놔주지를 않는다. A사장만 그런 것이 아니다. 50대 사장들 가운데 '토요일의 물귀신'들이 적지 않다. 술 때문이 아니다. 술을 잘 마시지 않는 사장 가운데서도 장기전을 즐기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그렇다고 회사 일을 제대로 못하는 것도 아니다. 건강을 생각해 몸을 사려야 할 나이의 사장들이 왜들 이러는 걸까.

알고 보면 불쌍한 면이 있다. 사장 신세치곤 처량하다. 회사에서는 '넘버1'이지만 집에서는 '넘버4 이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돈은 잘 벌어다 줄지 몰라도 젊을 때부터 늦게 귀가해서인지 성장한 아이들은 아버지를 별로 찾지 않는다. 이미 가계 경제권을 장악한 아내는 '잔소리쟁이 영감'이 하루종일 집에 있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A사장이 15년 전 골프를 배울 때 했던 말을 이제는 아내가 등떠밀며 한다. "골프도 칠 때 치는 거야."

회사에서는 편할 거라고? 천만에다. '넘버1'을 너무 깍듯하게 모시니 농담도 붙이기 어렵다. 그러면서도 큰 일이 벌어지면 사장이 결정내리기 전까지 모르는 척들 한다. 책임만 넘버1인 셈이다. 그러니 어쩌다 만나는 다른 회사 후배들을 보면 '너무 너무 너무' 반가운 것이다. 사회적으로는 넘버1,가정에서는 아무도 챙기지 않는 넘버4 이하.경제위기 속 대한민국 CEO의 모습이다. 그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매주 보낼 것이다.

한경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