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 매니지먼트] 기업들 요즘 ‥ SK직급파괴 실험 2년

"김매(매니저),어제 얘기한 기획서 다 짰어?" "예! 박매님 이메일로 곧 보낼게요. "

부장ㆍ차장 등의 직급이 사라진 SK텔레콤 직원들이 주고받는 대화 내용이다. 이 회사는 2006년 10월 수직적 상ㆍ하 관계의 직급 체계를 없앤 '매니저 제도'를 전격 도입했다.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 등의 직급 체계를 없애고 호칭을 '매니저'로 통일했다. 만성적인 인사 적체에 숨통을 터 주고 성장 피로감에 휩싸인 조직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한 처방이었다. 2년여가 흐른 지금 조직 문화는 어떻게 변했을까. 처음에는 직급 대신 매니저의 준말을 붙인 '김매''박매'식 호칭에 혼선이 생겼고 거부감도 적지 않았지만 대체로 "조직의 유연성이 높아졌다"는 게 SK의 내부 평가다.

외부 평가기관인 BEA(아시아최고직장)가 실시한 '직원 몰입도' 조사에서도 SK텔레콤은 국내 기업 평균치 43%를 훨씬 웃도는 93%를 기록했다. 몰입도 조사 결과는 "회사가 잘될 수 있다면 추가적인 노동 가치를 기꺼이 제공하겠다"는 직원들의 뜻을 그대로 보여준다. 매니저 제도 도입으로 직급과 무관하게 능력 있는 직원들이 더 많은 권한과 책임을 갖게 됐고 이는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조직문화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고 있어 몰입도 평가에서 좋은 결과를 얻게 됐다는 게 SK의 분석이다.

호칭 파괴는 직급에 걸맞은 '체면 문화'를 없애는 데도 일조했다는 게 내부 분석이다. 효율이나 능률과 상관없이 각종 허드렛일은 무조건 아랫사람이 떠맡아야 했던 구습이 사라지고,다른 기업이나 외부 기관과 일할 때 '직급'에 연연하지 않고 더 강한 책임의식으로 일하는 것도 장점으로 꼽혔다. 그러나 직급 파괴로 인해 핵심 중간 간부층인 부ㆍ차장들의 역할이 다소 위축된 것은 단점으로 지적된다. 팀제 위주로 조직이 재편되다 보니 팀장 1인에게 책임과 권한이 지나치게 쏠리는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자연스런 인력 물갈이가 어려워 조직이 정체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