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비 대출받으러 갔더니 … 月50만원 보험 들어달라

#1 서울 신림동에 사는 40대 직장인 이모씨는 지난달 하순께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려다 맘이 크게 상했다. H생명 평촌지점에서 1억5000만원을 대출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연락을 받고 직원을 만났다. 하지만 이 직원은 만나자마자 한 달에 50만원씩 3년간 보험을 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특히 보험에 가입한다는 서명을 먼저 하지 않으면 대출심사도 진행할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놨다. 이씨는 "돈이 부족해 집을 담보로 맡기고 대출을 받으려는 사람한테 한 달에 50만원이라는 큰 돈으로 보험에 들라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2 서울 서초동에 사는 50대 개인사업자 김모씨는 대출금 5억원의 만기를 두 달 남짓 앞두고 거래은행에서 전화를 받았다. 후순위채를 사줬으면 한다는 부탁이었다. 은행 직원은 후순위채를 사주지 않을 경우 대출을 회수할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김씨는 하는 수 없이 5000만원어치의 후순위채를 샀다. 금융위기로 인해 은행 보험사 등 금융회사들의 '꺾기'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꺾기'란 금융회사들이 대출을 해줄 때 예금이나 보험 등 금융상품 가입을 강요하는 것을 말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3일 라디오연설을 통해 "은행의 꺾기 관행이 여전하다"고 질타했지만 개선은커녕 오히려 더 심해지고 있는 양상이다.

금융회사의 '꺾기' 대상은 직장인 개인사업자뿐 아니라 중소기업으로 확대되고 있다. 또 가입을 강요하는 상품도 예금과 적금뿐 아니라 퇴직연금 등으로 늘어나고 있다.

각 은행들은 리먼브러더스가 파산을 신청한 지난 9월 중순 이후 중소기업에 대출하는 조건으로 퇴직연금을 옮겨 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자금줄이 말라버린 중소기업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보험사에 들어뒀던 퇴직연금을 은행으로 옮기고 있다. 실제 지난 10월 한 달간 금융권별 퇴직연금 계약 증가율을 보면 생보업계와 손보업계가 각각 0.5%와 0.8%,증권업계가 0.5%에 불과한 반면 은행들은 5.4%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보험업계가 문제를 제기하자 금융감독원은 최근 '퇴직연금 유치를 위한 과당 경쟁을 자제해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은행에 내려보내기도 했다. 금융회사 직원들은 자금난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꺾기를 요구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한 은행 임원은 "정부에선 은행에 대출을 확대하라고 촉구하지만 은행도 돈이 모자라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금융회사들은 수신 확충을 위해 직원 평가 때 수신 항목의 비중을 높이고 있고 직원들은 '꺾기'로 수신 목표를 채우고 있다. 특히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높이기에 온 힘을 쏟는 은행들이 후순위채 판매 실적을 평가에 중점 반영하기로 하면서 '꺾기'를 사실상 방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박준동/김현석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