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던 기업인들도 국선변호 신청 … 안타까운 사연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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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老) 변호사의 사무실 책상 배치는 조금 특이했다. 뒤편으로 사람 한 명 정도 드나들 공간을 빼놓고는 전부 책상으로 둘러싸인 것. 입구 쪽 책상은 찾아온 의뢰인을 접대하는 공간이고 왼쪽으로는 컴퓨터 책상이, 오른쪽으로는 각종 소송서류가 쌓인 책상이 자리잡고 있다. 뒤쪽 책상에는 전화기가 놓여 있다. 71세의 원로 변호사는 서울 서초동의 이 조그만 사무실 의자에 앉아 빙글빙글 돌며 국선전담 변호사로 바쁘게 활약하고 있었다.
"요즘같이 바쁜 때 이렇게라도 해야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지." 간명하면서도 명쾌한 논리다. 하루에 13번까지 법정을 드나들기도 했다는 그는 "근래 들어 회사가 망해 돈이 없다며 국선변호를 부탁하는 중견 기업인들이 많아 어깨가 더 무겁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법연수원을 갓 나온 변호사들이 한정된 국선전담 변호인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일 만큼 업계가 혹독한 겨울을 맞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국선변호를 전담하고 있는 법무법인 프로보노의 심훈종 변호사(고등고시 10회)를 8일 만났다.
1937년생. 보통 변호사 같았으면 어느 로펌에 '고문'이라는 직함을 달고 바쁜 일상에서 물러나 여유롭게 지낼 나이다. 그러나 심 변호사는 1958년 고등고시를 통과한 뒤 50년이 지난 지금도 현역으로 뛰고 있다.
1977년 서울형사지법의 부장판사를 마지막으로 법관생활을 끝내고 우일합동법률사무소를 세운 그는 대한변호사협회 부회장까지 지낸 소위 '성공한' 변호사였다. 하지만 2006년 그는 다시 한 번 과감한 변신을 시도한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변호사 선임을 못하는 형사 피고인을 무료로 변론하는 국선전담 변호사가 그가 선택한 새 일자리. 사선 변호사를 댈 경제적 여유가 없다는 간단한 소명만 있으면 누구나 국선 변호사의 도움을 받도록 관련 규제도 바뀌고 있어 앞으로 일감이 더 늘어날 전망이다.
30대의 새파란 후배 판사들에게 피고인들의 무죄를 호소해야 하지만 그는 지금이 가장 즐겁다고 말한다. "젊었을 때 딴 자격증 하나로 이만큼 누렸으니 인생의 마지막 장은 봉사로 채우고 싶었어. 당시만 해도 아무도 국선으로 일하려고 하지 않았지. 인생에서 마지막 봉사의 기회라 생각하고 일하고 있어요. "
한 달에 25건 정도의 국선 변호를 하는 그에게 지급되는 액수는 월 800만원. 사무실 임차료와 사무원 월급 등을 빼고 나면 무료 변론과 마찬가지로 남는 게 없다.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대부분의 서류 작성은 그가 직접 한다. 타자 실력도 분당 250타로 젊은이 못지않은 실력이다. 변호 실력도 지난 4년간 30여건의 사건을 무죄로 이끌 정도로 빼어나다. 구치소 수감자들 사이에서는 입소문이 자자하단다. 변호사업계에서는 "국선이 그렇게 열심히 하면 누가 비싼 사선 변호사를 선임하겠느냐"며 볼멘소리마저 들린다. 국선 변호사로 일하는 심 변호사가 가장 가슴 아플 때는 유죄선고를 받고도 고마워하는 피고인들을 볼 때다. 한번은 법정에 들어갔는데 재판장이 편지가 왔다며 그에게 건넸다. 같은 재판부에서 변호했던 피고인이 심 변호사의 주소를 몰라 재판부에 편지를 전해달라며 보낸 것.정성들여 쓰여진 5장의 편지에는 "비록 징역 10월을 선고받았지만 이제까지 이렇게 성심성의껏 변론해주는 변호사를 못 봤다"며 "앞으로 성실하게 수감생활을 하겠다"는 다짐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사업이 망해 국선 변호를 신청하는 기업인들이 많아 심 변호사의 일상은 예전보다 더 바빠졌다. 구속된 피고인들을 보러 구치소에 가는 월요일을 빼고는 매일 법정에 나간다.
그는 "중산층으로 남부럽지 않게 살았던 사람들이 국선 변호를 부탁하는 것을 보면 세상이 많이 어려워졌다는 것을 절감한다"며 "힘이 닿는 한 계속 현역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박민제 기자 pmj53@hankyung.com
"요즘같이 바쁜 때 이렇게라도 해야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지." 간명하면서도 명쾌한 논리다. 하루에 13번까지 법정을 드나들기도 했다는 그는 "근래 들어 회사가 망해 돈이 없다며 국선변호를 부탁하는 중견 기업인들이 많아 어깨가 더 무겁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법연수원을 갓 나온 변호사들이 한정된 국선전담 변호인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일 만큼 업계가 혹독한 겨울을 맞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국선변호를 전담하고 있는 법무법인 프로보노의 심훈종 변호사(고등고시 10회)를 8일 만났다.
1937년생. 보통 변호사 같았으면 어느 로펌에 '고문'이라는 직함을 달고 바쁜 일상에서 물러나 여유롭게 지낼 나이다. 그러나 심 변호사는 1958년 고등고시를 통과한 뒤 50년이 지난 지금도 현역으로 뛰고 있다.
1977년 서울형사지법의 부장판사를 마지막으로 법관생활을 끝내고 우일합동법률사무소를 세운 그는 대한변호사협회 부회장까지 지낸 소위 '성공한' 변호사였다. 하지만 2006년 그는 다시 한 번 과감한 변신을 시도한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변호사 선임을 못하는 형사 피고인을 무료로 변론하는 국선전담 변호사가 그가 선택한 새 일자리. 사선 변호사를 댈 경제적 여유가 없다는 간단한 소명만 있으면 누구나 국선 변호사의 도움을 받도록 관련 규제도 바뀌고 있어 앞으로 일감이 더 늘어날 전망이다.
30대의 새파란 후배 판사들에게 피고인들의 무죄를 호소해야 하지만 그는 지금이 가장 즐겁다고 말한다. "젊었을 때 딴 자격증 하나로 이만큼 누렸으니 인생의 마지막 장은 봉사로 채우고 싶었어. 당시만 해도 아무도 국선으로 일하려고 하지 않았지. 인생에서 마지막 봉사의 기회라 생각하고 일하고 있어요. "
한 달에 25건 정도의 국선 변호를 하는 그에게 지급되는 액수는 월 800만원. 사무실 임차료와 사무원 월급 등을 빼고 나면 무료 변론과 마찬가지로 남는 게 없다.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대부분의 서류 작성은 그가 직접 한다. 타자 실력도 분당 250타로 젊은이 못지않은 실력이다. 변호 실력도 지난 4년간 30여건의 사건을 무죄로 이끌 정도로 빼어나다. 구치소 수감자들 사이에서는 입소문이 자자하단다. 변호사업계에서는 "국선이 그렇게 열심히 하면 누가 비싼 사선 변호사를 선임하겠느냐"며 볼멘소리마저 들린다. 국선 변호사로 일하는 심 변호사가 가장 가슴 아플 때는 유죄선고를 받고도 고마워하는 피고인들을 볼 때다. 한번은 법정에 들어갔는데 재판장이 편지가 왔다며 그에게 건넸다. 같은 재판부에서 변호했던 피고인이 심 변호사의 주소를 몰라 재판부에 편지를 전해달라며 보낸 것.정성들여 쓰여진 5장의 편지에는 "비록 징역 10월을 선고받았지만 이제까지 이렇게 성심성의껏 변론해주는 변호사를 못 봤다"며 "앞으로 성실하게 수감생활을 하겠다"는 다짐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사업이 망해 국선 변호를 신청하는 기업인들이 많아 심 변호사의 일상은 예전보다 더 바빠졌다. 구속된 피고인들을 보러 구치소에 가는 월요일을 빼고는 매일 법정에 나간다.
그는 "중산층으로 남부럽지 않게 살았던 사람들이 국선 변호를 부탁하는 것을 보면 세상이 많이 어려워졌다는 것을 절감한다"며 "힘이 닿는 한 계속 현역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박민제 기자 pmj5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