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자본확충 안간힘] 정부 '기본자본' 기준 갑자기 높여…은행 초비상


"일단 맞추긴 해야겠지만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

금융감독원이 내년 1월 말까지 기본자기자본비율(이하 기본자본비율)을 9% 이상으로 높이라는 지시를 담은 공문을 내려보내고,국책은행을 통한 자본 확충 방침을 밝히면서 국내 은행들에 초비상이 걸렸다. 당장 금융당국이 정한 '기본자본비율 9%'가 통폐합 대상을 가르는 가이드라인이 되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부는 은행의 신규대출 여력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언제든지 구조조정의 잣대로 돌변할 수 있어 안심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은행,일단 맞추고 보자

우리금융지주는 9일 8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이 중 7000억원을 자회사인 우리은행 전환우선주를 매입하는 데 사용하기로 했다. 이 경우 우리은행의 기본자본(Tier1)비율이 0.5%포인트 오르면서 8%대로 올라서게 된다. 하지만 가이드라인 9%를 맞추기 위해서는 1조5000억원 이상 추가출자를 받아야 한다.

우리은행으로서는 정부가 밝힌 대로 국책은행을 통해 출자를 받는 것 이외에 다른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 중이다. 우리은행 고위관계자는 "정부의 증자 외에는 솔직히 대안을 찾기가 쉽지 않아 막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정부가 대주주인 만큼 추가 출자를 받는데 부담이 적지만 국민과 신한은행은 사정이 다른다. 신한은행은 "지난달까지만 해도 8%면 충분하다더니 갑자기 1%포인트씩이나 높이라고 해 부담이 크다"면서 "감독기관 요청을 무시할 수 없어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고 말했다.

일단 신한은 금융지주를 통해 7000억원가량의 회사채 등을 발행,은행 증자에 투입해 현재 8.5%인 기본자본 비율을 연말까지 9%대로 올린다는 계획이다. 내년에는 배당억제와 내부 잉여금 투입 등 고전적인 방법 외에 카드 증권 등 자회사로부터 배당을 받아서 은행 자본을 보강한다는 복안이다.

국민은행은 일단 기본자본 비율이 9%대로 합격점을 받았지만 4분기 결산을 장담할 수 없는 만큼 12일 KB금융지주가 발행하는 5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통해 증자를 추진,기본자본비율을 안정권인 9% 중반으로 올려놓기로 했다. 또 1조원 규모의 하이브리드채권을 발행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하나은행도 지주 회사가 발행하는 95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은행증자에 투입,기본자본비율을 7.43%에서 연말까지 8%대로 올려놓기로 했다. ◆정부,다른 뜻 있나

일부 은행들은 정부의 기본자본비율 확충 지시를 경영개입을 위한 명분찾기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정부 말대로 가계와 기업대출을 늘리기 위한 방편이라면 신용보증기관을 통하거나 국책은행이 직접 나서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비용도 적게 드는데 굳이 자기자본비율이라는 칼을 민간은행에까지 겨누는 것은 순수한 의도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자기자본 비율을 1%포인트 높이려면 조(兆)단위의 자본 보강이 이뤄져야 하는데 현재로선 기본자본비율을 다음 달까지 9%대로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정부의 요구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은행의 덩치를 키워 위기에 대응하겠다는 구조조정의 가능성을 깔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게 솔직한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경영권에 개입하지 않고 우선주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자본확충을 지원하겠다고는 하지만 경영진 선임 등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영국과 미국의 사례를 근거로 은행의 국유화를 단행하기 위한 전 단계 조치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은행권 고위 관계자는 "현재 상황이면 시중은행들이 두 자릿수의 자기자본비율을 유지하는데는 전혀 어려움이 없는데도 정부가 과도하게 은행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 용어풀이 ]

◆기본자기자본비율=자기자본을 위험자산으로 나눈 것이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비율이다. 이때 자기자본은 '기본자본(Tier 1)'과 '보완자본(Tier 2)'으로 구성된다. 기본자본은 자본금 내부유보금 등 실질 순자산으로 영구적 성격을 지닌 반면 보완자본은 후순위채권 등 부채 성격을 지닌 자본을 말한다. 보완자본을 뺀 기본자본을 위험가중자산으로 나눠 산출한 지표가 기본자본비율이다. 통상 자기자본비율 10% 이상,기본자본비율이 8% 이상이면 우량 은행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