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코쟁이들에겐 용광로보다 뜨겁던 조선의 온돌방...서양인의 조선살이, 1882~1910

정성화ㆍ로버트 네프 지음│푸른역사 368쪽│1만6000원

'미국 유일의 황후는 어떻게 왕관을 쓰게 되었는가?'1903년 11월29일 미국인들은 이런 제목의 '보스턴 선데이 포스트' 신문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신문의 반 쪽을 차지한 이 기사는 품위있는 옷차림의 에밀리 브라운이라는 서양 여성이 대한제국의 고종 황제와 이국적인 결혼식을 치르는 과정을 그린 그림들로 가득했다. 결혼식을 묘사한 기사 또한 스케치한 것처럼 생생했다. 에밀리 브라운의 개인사와 둘이 결혼에 이르게 된 과정까지 추적한 후속 보도도 잇따랐다.

그러나 기사는 명백한 허위였다. 에밀리 브라운은 실존 인물이 아니었고 명성황후가 시해된 뒤 고종이 그 해에 결혼한 것은 사실이지만 상대는 상궁이던 엄비였다. 러ㆍ일 전쟁이 일어날 것을 예상하고 많은 서양 기자들이 한반도에 왔으나 곧장 전쟁이 발발하지 않아 기삿거리가 없자 본국에 이런 허위 기사를 송고했다는 추정이 유력하다.

명지대 사학과 정성화 교수와 한국학 자료 수집가인 로버트 네프가 함께 쓴 ≪서양인의 조선살이,1882~1910≫는 이처럼 1882년 조ㆍ미 수호통상조약 체결부터 1910년 한일합방까지 주로 서울에 살았던 서양인들의 삶과 일상사를 생생하게 되살렸다. 지금까지 나온 책들이 대부분 구한말 한반도에 온 서양인들의 눈에 비친 이 땅의 사람과 풍경을 담았던 것과 대비된다.

당시 한반도에는 다양한 국적의 서양인들이 살았다. 선교사,외교관,광산 개발자,상인,기술자,사업가 등이 조선으로 흘러 들어 서울 정동에 서양인촌을 형성했다. 그 주변에는 새로운 상권이 형성돼 서양 상점이 들어섰고 '서울 그로서리'라는 한국인 상점도 있었다.

그러나 서양인들의 삶은 불편했다. 서울의 물가는 비쌌고 그나마 식료품이며 난방용 석탄 등을 구하지 못해 일본이나 중국에서 들여와야 했다. "우리는 단지 쌀과 사냥감,약간의 작은 과일만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고기는 많지만 도살하는 방법과 질이 나쁩니다. 채소가 없어 우리 스스로 이것을 길러야 하며 남부에서 재배되는 질 낮은 감자는 그나마 이곳까지 오지 않습니다"라는 호레이스 알렌 주한 미국 공사의 기록이 이를 말해준다. 거리는 지저분했고 시궁창에선 악취가 났으며 술주정뱅이와 싸움꾼이 판을 쳤다. 수십명씩 떼를 지어 약탈하는 바람에 해가 진 뒤 후미진 길은 통행할 수 없을 정도였다. 온돌방에 익숙치 않았던 그들은 방바닥이 용광로 같다고 불평했다.

당시 서울에 사는 외국인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프리메이슨 한양 지부 구성원들,고종에게 신임장을 제정한 지 석 달 만에 해임된 술주정뱅이 미국 공사,100m 앞에서 걸어가는 사람의 상투를 총으로 쏴 떨어뜨리는 등 엽기적 행각을 일삼았던 전기기술자 필립,근거 없는 소문으로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왕따'를 당했던 독일 공사 등 서양인들의 뒷이야기도 흥미롭다. 또 틀니,맥주,스케이트 같은 일상용품과 자전거,기차,자동차,항공기,영사기 등 서양문물을 접한 한국인들의 놀라움과 충격도 생생하게 남겨놓았다.

1912~1914년 한국에 거주했던 미국인 광부가 찍은 항공기 사진과 구한말 교통수단이었던 조랑말에 편자를 박는 모습 등 한국인들과 서양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각종 사진 자료들도 함께 실려 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