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 인터뷰] 교보문고 북마스터 신길례‥"내 머릿속엔 5만5000여권의 책이 살아 숨쉬고 있죠"

지난 8일 서울 종로1가 교보문고 광화문점 문학코너.40대 남자 고객이 안내데스크에서 황금색 명찰을 단 직원에게 "직장 동료들한테 선물하려고 하는데 30대 후반 여성들이 편하게 읽을 만한 책을 좀 추천해 달라"고 부탁한다. 평소에 책을 접하지 않던 사람들도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라….직원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에세이 판매대에서 책 두 권을 집어든다. 법정 스님의 산문집 ≪아름다운 마무리≫(문학의숲)와 톨스토이의 잠언집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조화로운삶).책을 받아든 남자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계산대로 향했다.

이 서점의 북마스터이자 문학코너 매니저인 신길례씨(36).13년 동안 문학도서만 담당해온 그의 머리 속에는 문학코너에 있는 2만3000여종 5만5000여권의 제목과 저자,출판사뿐만 아니라 책의 내용과 진열 위치에 관한 정보가 다 저장돼 있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고객이 요구하는 책을 즉각 찾아주는 것은 물론 독서 수준에 맞는 최적의 도서를 상담하고 안내해준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의 전체 직원은 아르바이트생을 포함해 276명.그중 77명이 책에 대한 열정과 지식으로 무장한 북마스터다. 왼쪽 가슴의 황금색 명찰이 북마스터,즉 도서전문가임을 표시한다. 신씨는 황금색 명찰과 더불어 목에 연두색 스카프를 매고 있는데 이는 문학코너 전체의 운영을 책임진 매니저 표시이다.


▼ 지금까지 읽은 책이 몇 권이나 됩니까. "정말 많은 책을 읽었죠.그런데 몇 권을 읽었느냐고 묻는다면 얼른 답하기 어려워요. 수없이 많은 책들을 다루면서 어떤 책들은 제목과 목차,서문 정도를 읽고 주요 내용을 파악하는 데 비해 어떤 책들은 애정을 갖고 음미하기도 하고 글귀를 외워버리기도 하니까 제가 읽은 책의 기준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거든요. 그러나 책 전체를 다 읽는 것을 기준으로 하자면 개인적인 독서와 업무상 읽는 책을 포함해 한 달에 15권 이상을 읽습니다. 교보문고에 입사한 이후 16년여 동안 그 패턴을 유지했으니까 대강 계산이 되시죠?"


▼ 지금까지 완독한 책만 3000권이 넘네요.

"업무상 읽어야 하는 책이 한 달 평균 12~13권 정도 돼요. 팀별 독서토론,매니저급 이상이 참여하는 독서코칭 교육,선정된 책을 읽고 과제물을 올려야 하는 온라인 교육 등 책을 읽을 기회가 많죠.그러나 제가 정말 읽고 싶은 책을 완독하는 것은 한 달에 2~3권 정도예요. 업무 시간에는 틈틈이 신간들을 대강 훑어서라도 읽어야 하므로 정작 제가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시간은 많지 않죠.일주일에 들어오는 문학 신간만 30~40종이나 되니까요. "
▼ 읽은 책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어떤 책이든 나름의 감동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장영희 교수의 ≪내 생애 단 한 번≫이 참 감동적이었어요. 삶의 희망을 찾을 수 있고,지금 내 위치와 건강한 육체가 얼마나 큰 행복인지 느낄 수 있기 때문이지요. "


▼ 책을 효율적으로 읽는 나름의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요. "모든 책을 완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요. 그래도 신간이 들어오면 대강 훑어서라도 다 읽어야 합니다. 이렇게 읽은 책들은 한 달 평균 독서량에 들어가지 않아요. 신간은 짬짬이 틈을 내서 보죠.매장에서 독자들을 대하고 도서를 관리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해요. 따라서 발췌독을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죠.또 독서노트를 습관화하려고 노력해요. 그러면 도서의 주요 정보를 기록으로 남길 수 있고,스스로 독서에 대한 관리 능력이 생기거든요. 스스로 얼마만큼의 책을 읽겠다는 목표를 정하고 관리하는 것도 독서력 증진에 도움이 돼요. "


▼ 책 정보는 어떻게 다 기억하나요?

"제가 입사한 게 1992년인데 그때는 매장에 컴퓨터가 없어서 모든 책의 저자와 제목,품절 여부 등을 다 외워야 했어요. 지금은 책이 꽂힌 서가의 위치까지 컴퓨터가 알려주기 때문에 솔직히 말해서 기억 의존도가 떨어져요. 그러나 독자들의 거듭된 문의에 답해 드리다 보면 기억하게 되고 스테디셀러나 베스트셀러는 더 잘 기억하게 되죠."

신씨는 2002년 MBC TV의 '느낌표-책책책,책을 읽읍시다' 프로그램에 1년가량 북마스터로 출연해 MC 유재석 김용만씨 등과 함께 전국을 누비며 독서상담을 했다. 그때만 해도 북마스터는 생소한 이름이었고,2006년 SBS 드라마 '연애시대'의 주인공 감우성이 북마스터로 나오면서 다시 한번 알려졌다.


▼ 북마스터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졌는데.

"교보문고에서 북마스터를 처음 도입한 게 2000년인데 초기엔 다들 잘 몰랐죠.텔레비전에서 소개하면서 대중성이 좀 생겼고 전화를 하거나 방문해 북마스터를 찾는 분들이 많이 늘었어요. 단순 문의나 책을 찾아 달라는 주문은 하루 50건을 넘고,책 관련 상담도 10건 이상 돼요. "


▼ 좋은 책을 가려내는 기준이 있나요?

"사실 베스트셀러라고 다 좋은 책은 아니죠.많이 팔리지 않아 판매대에서 빨리 사라지는 책 중에도 참 좋은 책이 있거든요. 이런 책들이 잘 팔렸으면 하는 마음에서 '숨은 책 찾기' 같은 기획도 해봤는데 꾸준히 하기가 어렵더라고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책이 쏟아져 나오고 그중에는 스쳐 지나가는 책도 많지만 나쁜 책은 없는 것 같아요. 각자에게 맞는 책을 읽는 게 중요하죠."


▼ 북마스터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북마스터는 커피전문점 '스타벅스'의 바리스타와 비슷합니다. 바리스타는 커피 전문가인 동시에 고객에게 서비스하는 직업인데 무엇보다 커피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일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북마스터 또한 독자 상담과 도서 정리,후배 교육,매장 MD(상품화 계획) 등 여러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데,가장 중요한 것은 책을 좋아하고 자기 일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그런 바탕 위에 책에 관한 전문지식을 풍부히 갖춰야 좋은 북마스터가 될 수 있죠."


▼ 날마다 새로운 정보를 업데이트하느라 힘들 것 같은데요.

"아침에 일찍 나와 신문 스크랩 하고,주말엔 신문에 난 서평기사도 꼼꼼히 훑어봅니다. 신문이나 인터넷 등에서 출판 관련 정보도 수시로 챙겨야 하고요,출판사 관계자들한테도 새로운 정보를 얻지요. "


▼ 서점 일은 어떻게 해서 하게 됐나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할 때 아르바이트로 들어온 첫 직장이 여기예요. 만일 '알바'를 신발가게나 아이스크림가게에서 했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 전 운이 참 좋았어요. 좋은 직장,좋은 선배들을 만난 덕분이죠."

신씨는 그 뒤로도 대학에 가지 않았다. 책을 읽고 기억하고 권하는 일에 대학공부가 꼭 필요할 것 같지는 않아서였다. 대신 그는 책을 통해 스스로를 연마해 정식 직원이 됐고 북마스터,매니저로 성장했다. 경제위기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을 소개해 달라고 하자 그는 고도원의 ≪당신이 희망입니다≫(오픈하우스)를 추천했다. "사회가 어려울수록 사람들이 책을 더 찾는 것 같다"며 책에서 위안과 용기와 희망을 찾아보라는 그의 표정이 참 밝다.

글=서화동ㆍ사진=허문찬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