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콰도르, 금융위기후 첫 디폴트 선언

코레아 대통령 "외채이자 3000만弗 못갚겠다"
좌파 성향의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이 이끄는 에콰도르가 지난 12일 외채 이자 3000만달러에 대해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된 이후 아이슬란드 파키스탄 우크라이나 헝가리 벨로루시 5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지만 디폴트를 선언한 곳은 에콰도르가 처음이다.

코레아 대통령은 이날 남서부 과야킬에서 기자들에게 "다음 주 만기가 돌아오는 외채 이자 3060만달러를 갚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30여년간 이루어진 차관은 불공정하고 불법적인 것이었다"며 "채권국들에 채무재조정을 요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배째라'식 디폴트,벼랑 끝 꼼수?

에콰도르의 디폴트 선언은 코레아 대통령의 '독단'에 따른 것이란 평가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및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 등과 함께 '남미 좌파 3인방'으로 꼽히는 코레아 대통령은 2007년 1월 취임과 함께 외채 재협상을 약속했다. 코레아 대통령은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2005년 에콰도르 경제장관을 맡기도 한 인물이다. 2006년 2월 에콰도르 시민동맹을 출범시킨 뒤 좌파 전선을 규합하고 빈곤층과 인디오 원주민들을 공략해 2006년 말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취임 후 1976~2006년 사이에 체결된 외채 협정에 대해 실태조사를 명령했다. 에콰도르 외채관리위원회는 1년여의 실태조사를 끝내고 지난달 20일 보고서를 통해 "과거 외채 협정에서 다양한 편법ㆍ불법 사실이 드러났다"며 "중복 지급과 불공정 조항,정부 고위관리들과 국제기관 관계자들의 직무 태만 및 부패 등이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에콰도르 정부는 지난달 말 전체 외채의 약 39%에 달하는 38억달러가 차관 제공 과정에서 불법ㆍ편법 사실이 드러났다며 브라질 국책은행인 경제사회개발은행(BNDES)에 갚아야 할 3억2000만달러의 외채에 대한 국제 상환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이런 맥락에서 코레아가 외채 상환 조건을 재협상하기에 앞서 고의적인 디폴트 선언을 통해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에콰도르 경제 상황도 디폴트 선언의 배경이란 분석이다. 에콰도르 수출의 60%를 차지하는 원유 가격은 지난 7월 고점 대비 70% 가까이 폭락한 상태다. 리사 쉬넬러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애널리스트는 "유가 급락에 따른 수출 둔화로 에콰도르의 재정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S&P는 최근 에콰도르 국가신용등급을 B-에서 CCC-로,무디스는 B3에서 Caa1으로 각각 강등시켰다. 이번 디폴트 조치는 에콰도르의 해외 자금줄을 막을 수 있는 위험천만한 결정이라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한국에도 파장에콰도르 디폴트 선언은 베네수엘라 등 에콰도르 채권을 보유하고 있는 최소 45개국에 직격탄이 될 전망이다. 베네수엘라의 경우 4억달러에 달하는 에콰도르 채권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디폴트 선언이 차베스 대통령과 코레아 대통령 간 균열을 만들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한국 정부도 수천만달러 규모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을 에콰도르에 지원해놓고 있어 파장이 우려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에콰도르에 지원하고 있는 EDCF는 이번 디폴트와는 무관한 자금으로 충분히 회수 가능하다"며 "다만 내년으로 예정된 에콰도르에 대한 EDCF 신규 자금 지원은 중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