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유통가 이야기] 이자카야의 변신…족욕도 하고 술도 마시고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킬빌 1'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면….아마도 영화 후반부 주인공(우마서먼)이 야쿠자 두목(루시리우) 일당과 혈전을 벌인 이자카야(居酒屋ㆍ선술집)를 떠올릴 것이다. 영화의 배경인 도쿄 니시아자부의 '곤파치(權八)'는 영화 속 장면을 고스란히 재현하며 유명세를 타고 있다.

점원들은 주인공(우마 서먼)이 입고 나온 노란 운동복 차림으로 주문받고,손님들에게 줄곧 '킬빌' OST를 틀어준다. 영화 속 야쿠자 두목이 술을 마셨던 2층 방은 수개월치 예약이 꽉 찼다. 회사원 마에다 가즈토시씨(37)는 "에도풍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달리 뭔가 터질 듯한 묘한 스릴을 느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불황 속에 일본식 선술집 이자카야도 변신하고 있다. 뿌연 담배 연기 속에 술잔을 기울이며 왁자지껄하던 칙칙한 이미지에서 탈피,다양한 이벤트를 가미한 이자카야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온천으로 유명한 고베 일대에선 최근 족욕(足浴) 이자카야가 선풍적인 인기다. 고베 시내의 이자카야 '고쿠락쿠(極樂)'는 테이블 밑에 지름 80㎝ 크기의 족욕기구가 있다. 손님들은 발의 피로를 풀어주는 알로에 성분을 넣은 따뜻한 온천수에 발을 담근 채 술을 마실 수 있다. 고쿠락쿠 관계자는 "간사이지역 고베와 오사카는 축구동호회가 가장 많은 곳인데 운동 후 지친 발을 온천수로 풀어주면 어떨까라는 생각에 족욕기구를 설치했다"며 "겨울철 부츠를 자주 신는 여성들도 꽤 흡족해 한다"고 귀띔했다. 인근 다른 이자카야에선 아예 발마사지 전문강사가 상주해 1만엔(15만원) 이상 결제한 손님에게 무료로 마사지를 해준다.

이 밖에 지바에 있는 이자카야 '하루모토'에선 손님이 남긴 음식을 사진으로 찍어뒀다가 나중에 그 손님이 오면 남긴 분량만큼 공짜로 만들어 준다. 대신 일주일 안에 와야 한다.

장성호 기자 ja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