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代를 잇는 家嶪] (39) 3대 손바느질 양복점 ‥ 3代 황상연 대표의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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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 먹어가며 기술 배워 디자인·마케팅 새바람
황상연 대표는 양복점을 물려받은 뒤 온갖 악조건을 극복해야 했다. 아버지 밑에서 일하던 기술자의 절반은 황 대표의 가업 승계 소식에 "새파랗게 젊은 사장 밑에서는 일할 수 없다"며 그만두고 떠났다. 그렇다고 원단을 재단하거나 바느질하는 기술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더구나 패션에 대한 지식도 없었다. 오히려 황 대표의 어깨에는 가게를 낼 때 생긴 은행 빚이 얹혀져 있는 상태였다. 이런 탓에 황 대표는 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강의가 없는 시간을 이용해 학교 도서관에서 디자인 책을 보며 원단을 재단하고 바느질했죠.친구들은 '대학생이 무슨 양복점을 하느냐'며 미친 놈이라고 놀리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
황 대표는 밤에는 패션학원에 다니며 양복을 직접 뜯어 보고 꿰맸다. 이 같은 열성과 끈질김 덕분에 3년 만에 기술을 배웠다. 황 대표는 "비록 사장이었지만 기술자들한테 욕을 먹어 가며 기술을 익혔다"면서 "한동안 '어린 놈이 양복에 대해 뭘 안다고…'라며 콧방귀도 뀌지 않았던 기술자들이 3년 뒤 양복장이로 인정했던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회상했다.
양복장이가 된 뒤 황 대표는 잇단 파격을 시도했다. 신체 조건에 상관 없이 만들던 맞춤 양복의 고정틀을 깨고 등 굽은 사람, 배 나온 사람 등 고객의 체형에 맞는 디자인을 개발해 적용하는 등 업계의 최신 패션을 선도했다. 또 깃·단추·주머니 모양 등의 디자인을 다양하게 바꾸기도 했다. 마케팅에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양복을 팔기 위해 매일 아침 7시부터 정오까지 아파트 단지를 돌며 맞춤양복 업계에서는 생소한 홍보 전단을 배포했다. 9월부터는 대학 졸업반 강의실을 찾아다니며 손바느질 양복의 우수성을 알렸다. 젊은 고객 유치를 위해 1996년 국내 최초로 양복을 맞추는 예비 신랑에게 양복보다 비싼 결혼예복 턱시도(대여비 50만원) 40벌을 만들어 무료 대여해 줬다. 그는 "이렇게 젊은 층을 공략한 결과 맞춤 양복을 잘 안 입는 20,30대 고객이 전체 고객의 30%를 넘고 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황 대표는 맞춤양복 업계에 20,30대 젊은 기술자들이 없다는 점이 안타깝다고 밝혔다. 유럽 패션 강국보다도 훨씬 우수한 바느질 솜씨 등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전수할 사람이 없어 수제품을 만드는 맥이 끊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것.이를 위해 황 대표는 손바느질 양복을 만드는 기술 인력을 양성하는 학원을 만들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황상연 대표는 양복점을 물려받은 뒤 온갖 악조건을 극복해야 했다. 아버지 밑에서 일하던 기술자의 절반은 황 대표의 가업 승계 소식에 "새파랗게 젊은 사장 밑에서는 일할 수 없다"며 그만두고 떠났다. 그렇다고 원단을 재단하거나 바느질하는 기술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더구나 패션에 대한 지식도 없었다. 오히려 황 대표의 어깨에는 가게를 낼 때 생긴 은행 빚이 얹혀져 있는 상태였다. 이런 탓에 황 대표는 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강의가 없는 시간을 이용해 학교 도서관에서 디자인 책을 보며 원단을 재단하고 바느질했죠.친구들은 '대학생이 무슨 양복점을 하느냐'며 미친 놈이라고 놀리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
황 대표는 밤에는 패션학원에 다니며 양복을 직접 뜯어 보고 꿰맸다. 이 같은 열성과 끈질김 덕분에 3년 만에 기술을 배웠다. 황 대표는 "비록 사장이었지만 기술자들한테 욕을 먹어 가며 기술을 익혔다"면서 "한동안 '어린 놈이 양복에 대해 뭘 안다고…'라며 콧방귀도 뀌지 않았던 기술자들이 3년 뒤 양복장이로 인정했던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회상했다.
양복장이가 된 뒤 황 대표는 잇단 파격을 시도했다. 신체 조건에 상관 없이 만들던 맞춤 양복의 고정틀을 깨고 등 굽은 사람, 배 나온 사람 등 고객의 체형에 맞는 디자인을 개발해 적용하는 등 업계의 최신 패션을 선도했다. 또 깃·단추·주머니 모양 등의 디자인을 다양하게 바꾸기도 했다. 마케팅에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양복을 팔기 위해 매일 아침 7시부터 정오까지 아파트 단지를 돌며 맞춤양복 업계에서는 생소한 홍보 전단을 배포했다. 9월부터는 대학 졸업반 강의실을 찾아다니며 손바느질 양복의 우수성을 알렸다. 젊은 고객 유치를 위해 1996년 국내 최초로 양복을 맞추는 예비 신랑에게 양복보다 비싼 결혼예복 턱시도(대여비 50만원) 40벌을 만들어 무료 대여해 줬다. 그는 "이렇게 젊은 층을 공략한 결과 맞춤 양복을 잘 안 입는 20,30대 고객이 전체 고객의 30%를 넘고 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황 대표는 맞춤양복 업계에 20,30대 젊은 기술자들이 없다는 점이 안타깝다고 밝혔다. 유럽 패션 강국보다도 훨씬 우수한 바느질 솜씨 등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전수할 사람이 없어 수제품을 만드는 맥이 끊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것.이를 위해 황 대표는 손바느질 양복을 만드는 기술 인력을 양성하는 학원을 만들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