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흡연 경고문

"담배 끊은 사람과는 상종도 하지 말라." 한때 유행했던 말이다. 금연에 성공할 정도면 엄청난 의지력을 가진 사람일테고 이런 사람은 시쳇말로 '지독한 인간'이니 멀리하는 게 낫다는 뜻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 말이 "아직도 담배 피우는 사람과는 상종도 하지 말라"로 바뀌었다고 한다. 여기 저기 온통 금연구역이라 담배 피우기가 보통 어려워진 게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담배를 피울 정도면 정말 독한 사람이라는 우스갯소리다. 어느 경우든 금연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빗대어 한 얘기다. 담배 끊기가 쉽지 않은 건 담뱃갑에 써 있는 경고문이 끽연 인구를 줄이는데 별 효과가 없다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그래서인지 각국은 담뱃갑 경고문의 수위를 점점 더 높이는 추세다. 흡연이 각종 암과 심장마비 발기부전 뇌졸중 등의 원인임을 명기하는 정도는 이제 상당히 보편화됐다. 캐나다 싱가포르 호주처럼 구강암 폐암에 걸린 환자의 섬뜩한 사진이나 죽음을 암시하는 무시무시한 그림을 담뱃갑에 새겨 넣은 나라도 23개국이나 된다.

국산 담뱃갑의 흡연 경고문도 지금보다 강화된다는 소식이다. 정부는 국민건강증진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고쳐 담배 연기에 포함돼 있는 벤젠과 비소 카드뮴 등 발암물질을 담뱃갑에 명기할 방침이라고 한다. '흡연이 폐암 등 각종 질병의 원인이며 특히 임산부와 청소년에게 해롭다'는 정도의 현 경고문에서 수위를 약간 올리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 정도 변화로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다소 자극적이라 하더라도 한눈에 들어오는 사진이나 그림을 넣는 것이 흡연인구를 줄이는 데는 좀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사실 흡연의 폐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흡연부모의 아이들이 더 충동적이라는 연구에 이어 어릴적 간접흡연에 노출된 여성들이 불임이나 유산을 경험할 가능성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매우 높다는 연구 결과도 최근 나왔다. 여성 불임의 원인이 과거 그 여성 아버지의 흡연 때문일 수 있다는 얘기다.

새해가 오면 수많은 아빠들이 금연을 결심한다. 딸 가진 아빠들은 장차 태어날 외손자를 위해서라도 이번 만큼은 기필코 담배와의 전쟁에서 승리해야 하지 않을까.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